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바다 Jan 01. 2019

거칠고 무딘 사람이 되지 않는 법

비워내니 홀가분하다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

토요일 시내로 커피 마시러 나갔다. 

덜컥 군청색 티셔츠를 샀다. 유명 브랜드의 50% 세일 간판을 보고 한 번 둘러보기나 하자고 들어간 옷 가게에서였다. 여름 티셔츠는 그만 사도 되겠다고 몇 번 다짐했었다. 옷장엔 이미 각종 색상과 패턴의 티셔츠가 수북하다. 새 옷을 살 때마다 헌 옷 하나를 버려야지 하는 다짐은 그저 생각뿐이다. 옷 정리를 하다 보니 '아, 이런 것도 샀었지'하면서 몇 번이나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단순함과 절제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스트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비워진다.

관계가 꼬리를 물면서 언뜻 지나친 사람도 언제 어디서 이 사람이 필요할지 모르니 일단 연결해놓자고 계산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몰래 두드리고 있는 계산기를 상대가 못 보리라는 기대 자체가 이미 게임에서 진 것이다. 스쳐가는 관계에서 게임은 그래서 피곤하다. '시간이 지나면'이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지혜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무수한 시행착오들을 겪은 경험에서 우러난 내공의 힘이다. '자연스럽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속내를 공감하는 듣기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말수도 적어졌다. 나와 다른 차이와 색다른 다양성을 포용하는 여유의 폭은 넓어졌다. 거품 빠진 주위엔 사람이 줄었다. 허튼 관계 속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명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처음엔 10분도 앉아 있기 힘들더니 어느덧 매일의 저녁 명상이 기다려진다. 까맣게 내려앉은 어둠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넘나든 잡생각들의 안쪽을 들여다보며 구경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 관계에서 비롯된 생각과 잡상에 얽힌 감정들이 엄습한다. 가짜 생각과 내면의 의식 사이의 경계선을 긋는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모였다가 흩어지는 크고 작은 생각의 파편들과 어지러운 감정의 집합을 타인의 눈으로 가만히 지켜본다. 서서히 그 혼란이 잦아들 즈음 내면의 평화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홀가분하게 그 비움과 가벼움을 음미한다. 명상의 즐거움이다.


그 비워진 텅 빈 여백의 공간에 한 줄기 맑은 바람이 지나가려나 

내면의 마음이 밖으로 투영된다는 내심외경(內心外境)이라 

비워내니 홀가분하고 내려놓으니 가볍다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고 아니면 아닌 대로 하는 수 없지 않은가


티셔츠 한 장의 충동 구매가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들었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어야겠다.


이전 15화 1분 안에 당당하게 대답하고 싶은 세 가지 질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