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바다 Jun 02. 2016

1분 안에 당당하게 대답하고 싶은 세 가지 질문

금요일 저녁 웰링턴의 악명 높은 남풍이 얼음비를 달고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어둑해진 퇴근길의 시내 거리를 노란색 버스들이 쉴 새 없이 채운다. 기다리는 초록 버스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정류장 앞 가게의 눈곱만큼 삐져나온 처마 밑에서 비바람을 애써 피하고 있다.

이때 웬 건장한 젊은 친구가 흠뻑 비를 맞은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뒤에는 그 친구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체구의 여학생이 큼직한 방송용 카메라를 우비로 감싼 채다.

"저희는 빅토리아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하고 있는 샘과 바네사라고 합니다. 졸업 작품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어요. 1분짜리 짤막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재미있을 거 같았다. 지붕이 넉넉한 쇼핑몰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네사가 가녀린 어깨 위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샘이 별거 아니라는 듯 건성으로 말했다.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하하하. 일상의 의미에 관한 세 가지 질문인데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대답하면 됩니다. 1분 안에 모두 끝내도록 하죠."

1분이란 말에 은근 조급해졌다.  

"첫 번째는 일상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당신이 일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갑자기 온갖 대답들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버린 채 쉽게 나오지 않았다.

"....... 행복하기 위해 삽니다."

가까스로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샘이 마이크를 다시 내밀었다.

"......."

짧고 간결한 대답은커녕 주절주절 기다란 대답 조차 할 수 없었다.

"잠깐.. 다.. 다시 우리 다시 합시다."

10초쯤 고민하다가 급하게 답을 꺼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겁니다."

샘이 싱긋 웃었다.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유와 방법을 다 알고 있으니 그걸 얻기 위해 오늘 하루 무엇을 했습니까?"

"........'

'그냥 어제랑 비슷하게 되는 대로 보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나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세 가지 대답을 쉽게 못하니... 창피하고 부끄럽네요."

여태껏 미소를 잃지 않던 샘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1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병원, 사무실, 기차역, 슈퍼마켓, 거리에서 지금처럼 무작위로 즉석 인터뷰했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을 1분 안에 단 한 번에 끝난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아요. 그나마 진지한 고민이 없는 무성의한 대답들이었죠. 대다수는 이 질문들에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대 여섯 번의 인터뷰는 다반사였고 몇 시간 후 심지어는 그 다음날 약속해서 다시 인터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바람에 젖은 몸을 버스 안의 온기로 데우면서 샘이 건넸던 세 가지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모두 '왜' - '어떻게' - '무엇'으로 귀결되었다.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즉 나의 목적과 목표는 무엇인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과연 알고 있는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걸 매일 치열하게 실행하고 있는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세 가지 대답은 궤도를 이탈해 헤맬 때 다시 빛을 밝혀주는 내비게이션이 된다. 정답은 없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한 치의 주저 없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대답은 나의 가치관과 인성을 보여줄 것이다. 바로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른 나로 만들어주는 나만의 고유한 색깔이기 때문이다.

이전 14화 작은 파도가 만드는 '완벽한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