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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바다 Jun 13. 2019

웰링턴 호스피스 센터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되는 용기

이제 한국에서 태어나 산 기간보다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오래되었다. 웰링턴은 나와 우리 가족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페북에도 고향을 적는 란에 Wellington이라고 써넣었다.

<웰링턴 Marry Potter Hospice 센터에서 바라다본 인근 동네 모습>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거기 가면 너무 우울해지지 않느냐?"란 질문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천만에요. 그곳이야말로 삶이 가장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대답해주곤 했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점심 봉사를 다녔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빵과 수프, 그날의 주식, 디저트 순으로 병동을 돌며 환자에게 음식을 서빙하는 일이다. 대략 2시간가량 걸렸다. 서빙이 끝나면 그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지하에 위치한 주방 옆,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곳으로 내려와 인근 동네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가득한 청아한 토요일 오후, 잠시 그곳에 가만히 선 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음미했다. 그러면서 가끔씩 내게 묻곤 했었다.
'지금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지..' 
떠날 것이란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엇이든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용기를 얻곤 했다.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이 되는 용기 말이다.

  
2달간의 트레이닝을 거친 후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1년 넘게 했다. 센터 기금 마련을 위해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내에서 딸기를 팔기도 했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유명 백화점 앞에서 선물을 포장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선물을 포장해주면 (깔끔하게 포장하는 법을 아내에게 따로 배웠다) 어떤 사람들은 고맙다고 웃으면서 그냥 갔지만 대부분은 1불이나 2불짜리 동전을, 또 어떤 사람은 20불짜리 현금을 기금 마련함에 흔쾌하게 기부하기도 했다. 자신의 가족이 메리 포터 호스피스에서 마지막을 맞았다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그 해 성탄절날 점심 봉사를 자원했다. 7년 전인데 내 생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이때의 경험들이 그 후에 내가 쓴 소설 '샹그릴라로 가는 완행열차'를 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곤 당시엔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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