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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Cho Oct 14. 2017

위대한 회사의 평범한 신입사원(2)

해외편

내가 구글 재팬으로 가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당연히 축하를 해주면서도 또 동시에 왜 구글 코리아를 떠나서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해했고, 그중 열에 아홉은 왜 하필이면 일본인지를 물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본사가 있는 미국이 아니라 어째서 히라가나 한 자 읽지도 못하면서 일본으로 가려고 하는 것인지 많이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결정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대책 없이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조금 의외일 수 있지만, ‘디즈니랜드’에서 경험했던 일이 이 결정을 내리는 데에 크게 작용했다. 맞다, 뜬금없지만 바로 그 미키마우스의 디즈니랜드에서였다. 


구글에는 대학에서 갓 졸업하고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전 세계 공통으로 운영되는 2년짜리 프로그램이 있다. 운 좋게도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APAC우수 신입사원에 선발되었었는데, 그 포상이 바로 전 세계에서 선발된 다른 친구들과 디즈니랜드에서 받는 리더십 교육*이었다. 대표로 선발된 것도 기뻤고 처음 가보는 디즈니랜드도 설렜지만, 한국 바깥에서 나랑 비슷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된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 설렘과 들뜬 마음은 도착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곧 산산조각이 났다. 스무 명 남짓의 참가자 중에 당연히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고, 영어실력도 그중 가장 모자라서 창피하지만 그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하고 겉돌게 된 것이었다. 


한국과 다른 토론형식의 교육과정, 서양문화 중심의 이야기 전개, 아일랜드나 인도 같은 다양한 영어 발음이 한 데 섞이면서 어느 순간 나는 완전히 뒤처지고 말았다. 그냥 1:1 대화라면 적당히 대화의 속도가 조절되면서 따라갈 수 있었지만, 단체로 여럿이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들의 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도무지 내가 말할 수 있는 틈이 생기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생각을 깊게 한 후에 조심스럽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한국 문화와 달리, 그 친구들은 대화 중간에라도 거리낌 없이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빠르게 제기했고, 대화 곳곳에 서양식 유머와 위트를 녹여내면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그런 스킬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렇게 빠르게 내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도 못했다. 

심지어 미국팀에서 온 한 친구의 이야기는 나를 까무러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한국 오피스가 작았다지만 그 친구 혼자 담당하는 매출액이 한국의 우리 팀 전체 매출과 맞먹었던 것이었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때야 나는 크게 실감했다. 나는 철저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한국 바깥에 엄청난 크기의 세계와 내가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영어로 일을 할 수 있다'와 '영어로도 일을 잘 한다'는 다르다


디즈니랜드에 리더십을 배우러 갔었건만, 내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영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일을 해 왔지만, 정작 세계무대에서 영어로 일을 하면서도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영어로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영어로 매일 외국인과 토론하고, 때때로 그들의 반대를 논리적으로 이겨내고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면 시시콜콜한 주변 이야기부터, 어젯밤 뉴스에 나온 정치에 대한 이야기, 한창 인기 있는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유행어들, 심지어는 풋볼이나 NBA의 경기 내용들도 이야기하게 될 텐데, 이에 대한 아무런 문맥도 지식도 없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동양인이 미국 땅에서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런 대화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나에 대한 인상과 평판이 되고, 그렇게 해서 나의 업무 평가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라면, 결국 그래서 단지 영어 때문에 나의 다른 능력마저도 평가절하되는 일이 생긴다면 대단히 슬픈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APAC**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시험해 보는 것이었다. 내가 과연 영어로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할 수 있다면 APAC에서만 가능할 수준일지 아니면 미국에 가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정말 한국에서 한국말로 일을 해야 할 사람인 것인지를 스스로 먼저 시험해보고 싶었다. 안될 거라고 애당초 포기하는 것도, 무턱대고 무작정 도전하는 것도 아닌 잘 계획된 단계를 안전하게 밟고 싶었다. 그렇게 영어를 항상 사용하면서, 또 동시에 APAC 전체를 담당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금의 일본 자리였다. 내게 꼭 맞는 잘 정돈된 도전이었다.


그 도전 이후로 이제 2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당연히 처음에는 모든 것을 영어로 일하는 것도, 너무나도 넓고 다양한 APAC 마켓도 모든 게 매우 낯설고 벅찼지만, 다행히 지금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적어도 한국에서 한국말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도전 덕분에 내게는 조금 더 넓은 세상과 더 큰 가능성이 좀 더 확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도전의 너머에 또 어떤 새로운 도전과 결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정확히는 Diney Institute에서 진행하는 Leadership 프로그램

** (서쪽에서부터) 인도, 동남아시아 (싱가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중심), 중국/홍콩/대만, 한국,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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