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큰 변화는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순식간에 결정이 나버리기도 한다.
대입에 실패하고 삼수를 마음먹었을 즈음 받은 추가합격 전화라든가, 구직활동 시작과 동시에 구글 입사로 싱겁게 끝난 취업, 그리고 갑작스럽게 제안받은 구글 재팬의 포지션 등이 그랬다. 이런 굵직굵직한 인생의 큰 변화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도 못하게 내게 찾아왔었다. 내 모교와 전공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었고, 구글이라는 회사는 애당초 목표한 회사 리스트에 있지도 않았었다. 내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당연히 평생 동안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 굉장히 신기한 일들이었다.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 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커리어를 미리 계획하지 않았다.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 같아서 오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아마 본인 스스로도 정부 조직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실리콘 벨리로 가게 되고, 또 구글에서 일하다가 한참이나 어린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와 함께 일하게 된 지난 경험들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와 비슷하게 예상치 못한 변화와 경험을 20대 내내 겪게 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과거에는 내가 내 미래를 전부 성실히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배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게 찾아온 그 급작스런 모든 변화들을 전부 '운'이라거나 '우연'같은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사 최선을 다하면서 내가 잘 준비되어 있다면 예상치 못한 기회와 그에 따른 긍정적인 변화들이 자연스레 찾아온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깨달았다는 말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표현이 더 맞는 말 인지도 모르겠다. 사다리처럼 꼭 선형으로 내 미래를 정교하게 계획하지 않더라도 내가 매번 찾아오는 기회마다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그 결정들과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서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거라는 자신감 말이다.
그 자신감이 서른 살의 나에게 있었다.
히라가나 한 자 읽지 못했고, 친구나 가족 한 명 일본에 없었지만 도쿄에 살겠다고 결정해버린 것도 그런 자신감에 기인했다. 지금의 일본팀 매니저로부터 갑작스러운 포지션 제안을 받고, 그 큰 결정을 내릴 때까지 3일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갑작스러운 결정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 왜 하필이면 일본인지, 왜 하필이면 이 팀인지, 왜 하필이면 지금이어야 하는지 많이들 의문스러워했다. 물론 '영어로 일을 하는 APAC 포지션이'라는 큰 기준은 있었지만, 그 외의 다른 점들은 사실 깊은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내가 또 최선을 다하면 그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니 그렇게 내가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뿐이었다. 내 나름대로의 도전이었다.
그 도전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30년의 모든 익숙함과 편리함을 송두리째 뒤엎었던 이 도전이 앞으로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 도전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굉장히 많은 경험과 배움이 있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한 뼘쯤은 성장해있지 않았을까. 지그재그 같은 이 도전의 끝이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