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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승욱 May 05. 2020

아기 이름이 뭐야?

역지사지의 계기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기가 울고 있고, 엄마와 아빠는 난감해하며 아이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다. 장소는 공공장소다. 지하철이 될 수도 있고, 식당이나 여느 매장이어도 좋다.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어휴 시끄러워’ 하고 냉정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모가 힘들겠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아마도 본인이 그런 일을 겪어봤을 확률이 높다.


나도 한 때 그런 일을 목격한 적이 있었고, 그럴때면 아이의 부모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교육을 영 못 시키는 것 아닌가, 애를 잘 못 키우는 부모가 아닌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가 우는 것은 혹은 떼를 부리는 것은 성장하는 과정에 반드시 겪게되는 일에 불과했다. 때로 아기는 자지러질 정도로 울기도 하는데, 달래려고 애를 써도 통제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경우가 갑작스레 찾아오기도 한다. 울음에 원인은 분명 있겠지만, 가끔씩은 평상시 울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니 어찌 부모만 탓하랴.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보자. 지인이 아기를 낳았다. 지인은 당신의 친구일 수도, 형제나 자매일 수도 있다. 당신은 말을 건넨다. “축하해~ 아기 너무 귀엽다. 이름이 뭐야?” 지인이 대답한다. “고마워, 아기 이름은 개똥이야.” 바로 이 지점에서, 아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당신의 반응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은 어머 정말 개똥같은 이름이구나 라고 반응한다. 다른 사람은 이름이 좀 흔하네, 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은 “이름도 너무 이쁘다. 개똥아~” 라고 이름을 불러준다.


아기가 생긴 후에 주변 사람들이 이름을 물어보길래 대답해줬다. 반응은 제각각이다. 충격적이었던 반응도 있다. “이름이 부르기 어렵네” 라는 반응이 첫번째다. 듣고 어이가 없었다. ‘이미 짓고 출생신고도 했는데 어쩌라고? 굳이 그런 얘기를 왜 꺼내지?’ 라는 생각과 함께 혼자서 아기 이름을 반복적으로 빠르게 되불러 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부르기 쉽기만 하구만!’


어이가 없었던 두번째 반응은 이것이다. “남자 이름에 무슨 꽃이야” (내 아이의 이름에는 꽃 유 자가 들어간다.) 듣자마자 기분이 팍 상했다.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생각도 없이 비평이라니 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예수님도 ‘백합화’라고 비유하건만!


생각없이 뱉은 말을 곱씹으며 기분나빠 해봐야 좋을 게 없으니 그냥 털어버리고, 나는 내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누군가 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던가. 나 역시 비평가였다. ‘흔하네, 과하네, 촌스럽네, 이상하네’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부디 생각만 했고 말로 내뱉었던 과거는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정말 바보같은 짓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대충 짓는 부모는 없다. 많은 고민과 토론 끝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는 것이 이름이다. 그 의미는 부모의 기대 또는 아이를 향한 소망 뭐 이런 온갖 좋은 것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고작 한음절에서 세음절 되는 몇자만 보고 이름이 좋니 마니 평가했다니! 나는 정말 몹쓸 짓을 했던 것이다.


아이가 생기고 전혀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니, 다른 부모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겪어 봐야 알게 된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가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일들로 인해서 앞으로는 같은 무례함을 범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제 내가 직접 몸소 겪고 알았으니, 앞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 녹아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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