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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승욱 May 02. 2020

크리스마스의 기찻 소리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한 다음 날 아내는 산부인과에 갔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심 결과가 궁금했던 나는 아내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담스러웠던 임신 소식은 하루만에 금새 기쁨으로 바뀌었고, “임신 맞대!” 라는 아내의 연락과 이제 몇주 정도 되었다는 구체적인 소식을 궁금해했다. 아내의 메시지는 뜻밖이었다.


“아직 아기 집이 안 보여! 일단 피검사로 한 번 더 검사 해보기로!”


오잉, 이게 무슨 말이지? 산부인과만 가면 임신 여부도, 몇주차인지도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이십대 후반의 초짜 아빠는 알 턱이 없었다. 아내는 “내일 피검사 수치로 알려준대!” 라는 말과 함께 “혹시나 자궁외 임신이면 통증이 심하고 수술을 해야한대” 라는 말도 덧붙였다. 임신이라는 게 남들 다 하는 것 같아도 만만한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아기가 자리를 잘 잡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 길에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들러 피검사 수치를 확인했다. 수치는 410이 나왔고, 아내가 보여준 수치표에 따르면 아기가 생긴지 4주 정도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추정이었고,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또 초음파를 통해 아기 집이 생겼는지, 크기는 얼마나 되었는지 확인해야 알수 있다고 한다. 아내는 아기 집은 5주정도 되어야 볼 수 있고, 6주가 되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많은 것을 알아보면서 이미 엄마가 될 준비를 본인도 모르게 척척 하고 있었다.


5주차가 되니 진짜 아기 집을 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사진으로만 확인했지만, 일하면서 몰래 본 아기 집 사진에 왠지 마음이 뭉클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인데, 그래도 아빠라고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가. “위치도 아주 좋고 피고임도 없고 아주 안정적으로 자리를 잘 잡았대!” 하는 아내의 말에 코끝이 찡했다. 아기 집이고 난황이고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에게서 이런 감격을 느낄 수 있다니.


6주차에는 아내의 말대로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으러 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설레는 일인데, 하필 우리에게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에 아기의 심장소리를 처음 듣는다니! 기가막힌 예약 일정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나중에 아기가 크면 “엄마 아빠가 네 심장 소리를 처음 들은 날이 크리스마스야. 꼭 성탄절 선물 같았지.” 라는 말을 해줄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었다. 그것 참 동화같은 이야기 같아서 정말 마음에 쏙 든다.


아내와 초음파를 같이 보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0.4cm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정도 크기면 6주 1일 정도 된 것 같구요. 출산 예정일은 8월 19일 되겠네요.”


0.4cm... 1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생전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느끼고 있구나. 그 작은 몸으로 이렇게 생명력을, 존재감을 뽐내다니 대단한 녀석이구나 싶다.


“여기 깜빡깜빡 하는 게 심장이에요.”


일전에 아내가 “심장 뛰는 게 반짝반짝 하는 것처럼 보인대. 그래서 심장이 반짝반짝 뛴다고 표현한대.”라고 이야기 해준 것이 떠올랐다. 그것 참 이쁜 표현이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심장은 그냥 선생님 말씀처럼 깜빡깜빡 뛰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했던 게임 ‘팩맨’이 입을 닫았다 벌렸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 대망의 심장소리! 선생님이 초음파에 무슨 노란 선 같은 것을 가져다 대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쿠궁쿠궁쿠궁, 쿠궁쿠궁쿠궁”


기찻 소리다. 쿠궁쿠궁쿠궁, 쿠궁쿠궁쿠궁, 기차처럼 씩씩한 심장소리를 뽐내며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고향을 오고가며 기차를 수도 없이 탔지만, 나에게 기찻 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니 유일하게 떠오르는 건 이날 들은 아기의 심장소리다. “쿠궁쿠궁쿠궁, 쿠궁쿠궁쿠궁” 하고 들렸던, 크리스마스의 기찻 소리.


진료를 마치며 의사 선생님이 “2주 뒤에 또 오세요. 그 때 오시면 더 재밌는 거 보여드릴게요.” 라고 인사하셨다. 아내는 “재밌는 거 보여준대.” 하고 선생님의 말을 되뇌며 큭큭 거리고 웃었다. 우리는 2주 뒤에는 아기가 얼마나 커있을지 상상하며 병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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