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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승욱 May 01. 2020

아기가 생겼다고?

임신 소식을 처음 들은 남편의 기분

“남편! 아빠가 된 것 같아!” 또는 “아기가 생겼어!”

아내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남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기분이 들까?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마냥 행복해할까? 기쁨의 미소를 띠고 아내를 꼬옥 껴안고 싶을까? 정말 그러고 싶을지 모른다. 사실 일반적인 반응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통계를 내 본 적도 없고, 주변에 물어본 적도 없다. 상황에 따라 누군가는 행복을, 어떤 이는 당혹감을, 다른 이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내가 처음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남편이 기쁘게 반응해주지 않으면 참 서운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나는 그 순간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아내가 임신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면서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임신 테스트기로 확인했기 때문에 아직 산부인과에 가서 확진을 받아야 했지만, 임테기의 정확도는 90%를 넘는다. 틀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임신은 기정 사실인 셈이었다.


그 순간 내 속에서 일었던 감정들은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듯 하다. 당혹감, 부담감, 책임감 그런 감정들이 뒤섞였다. 그리고 ‘내가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까지 더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바라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때가 되면 생길 것이라고 여겨오던 터였다. 심지어 자녀를 둔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20대 초반부터 내가 그려오던 내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일이 눈 앞에 닥쳐오니 정작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임신 소식을 듣고 내가 처음 한 일은 책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곧장 컴퓨터 앞에 가서 임신, 육아 관련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조언과 경험담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임신 시기에 아내들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책을 찾다 보니 임신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졌던 남편들은 나 외에도 꽤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자 아빠로 어찌보면 당연한 책임감일 수도 있는 것일까? 내가 마냥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아무튼. 이 책 저 책을 살펴보고 우선 8권의 책을 주문했다. 종류는 다양했다. 아빠가 쓴 육아 이야기부터 태교 동화, 임신 했을 때 좋은 요리 레시피 책 등등. 돌이켜 보면, 이 때 책을 사 읽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책 값은 10만원이 조금 넘었지만, 아내의 임신기간 동안 그 이상의 값어치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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