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말' 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말'을 건네야 한다
How-to-say를 다루는 앞선 글에서는 "같은 메시지여도 다른 효과를 낸다"는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톤앤매너에 대한 관점을 다루려고 합니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이전 장은 음식을 어떤 모양새로 담아내는지를 다루는 담음새 즉 플레이팅을 다루었고, 이번 장은 담음새를 결정하는 그릇 자체를 다루려고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의 How-to-say를 논할 때, 꼭 메시지의 톤앤매너를 고민하는 단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메시지를 어떤 컨셉으로, 어떤 느낌으로 전달할지 결정하는 것인데요. 언어적으로, 시각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메시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요소의 수립과 설계에 대한 고민이 따라옵니다. 일종의 컨셉 또는 세계관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적 요소라고 하면 말투(문체), 여러 동의어 중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표현의 방식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각적으로는 색상, 디자인, 레이아웃 등이고, 경험적으로는 고객이 브랜드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어떤 감정과 기억을 남기면 좋을지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고민을 포함합니다. UX 또는 직원의 분위기와 고객 응대 가이드 등을 수립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무형의 서비스들이 굳이 팝업스토어를 열며 오프라인에서 고객 경험을 형성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톤앤매너에 대한 고민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수적인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톤앤매너를 설정하고 이걸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제성,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과정에서 지켜야 한다는 일관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실제로 마케터들에게 들어오는 챌린지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케팅 콘텐츠들 디자인 퀄리티 떨어진다. 디자이너들한테 의견 받고 컨펌 받아라."
"우리 서비스는 전문성이 높은 서비스인데, 마케팅 메시지 이렇게 나가는 거 좀 재검토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이제 고객들한테 신뢰를 쌓아야 한다."
"A 브랜드는 참 브랜딩 잘하는데 우리도 저렇게 해보자."
등등. 기획, 제품, 개발, 디자인 부서 등 여러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마케팅 부서에게 들어옵니다. 최근에는 대표님들도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경로에서 듣고, 마케팅 부서에게 브랜딩까지 기대하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케팅 효율, 성과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 명백하다면 브랜드 톤앤매너를 유지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똑같은 메시지에 브랜드 톤앤매너를 잡은 버전의 광고 소재와 랜딩페이지를 실험했을 때, 퍼포먼스가 10배 가까이 줄어들었던 경험을 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즉각적인 반응을 만드는 표현은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퍼포먼스를 목적으로 하는 마케팅 캠페인에 대해서까지 브랜드 가이드의 준수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브랜딩 캠페인을 동시 진행하면 퍼포먼스도 잘 나온다는 주장들이 있기는 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런 주장은 메타, 구글과 같은 광고 매체에서 합니다. 광고주가 브랜딩 캠페인을 더하는 결정으로 이득을 보는 이해관계자들입니다. 광고주가 버짓을 더 쓰는 게 그들의 역할이기에, 메신저가 누구냐에 따라 그 주장의 타당성을 의심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올해 WARC에서 발간한 리포트(The Multiplier Effect Report 2025)도 브랜드 자산을 구축하면 장기 매출 효과뿐만 아니라 단기 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브랜드 마케터가 자신의 업무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어필하는 근거자료가 되기도 하는데, 저는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퍼포먼스에 광고 예산이 편중되고, 결국 광고 효과가 감소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둠 루프). 브랜드 자산의 구축과 퍼포먼스 캠페인 통합된 전략을 통해 수익률도 높아지는 승수효과가 발생한다.
관련 주장을 하는 보고서 장표에 미흡함이 있습니다. 주장과 근거로 보이는 수치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실험인지, 표본은 어떤지, 또 연구 설계는 어떠했는지 설명이 불충분합니다.
또 해당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성과 중심의 투자가 반드시 이러한 부정적인 순환에 빠지는지를 명확하지 않다는 점, 브랜드 자산의 구축이 수익률 향상에 기여한다는 인과의 논리적 연결고리도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구매자들이 "잘 알려진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향이 보인다는 것으로는 브랜드 자산 구축이 필요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지속적인 수행으로도 브랜드는 얼마든지 알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리포트는 이 외에도 다양한 근거들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거들의 연구 방식이 명확하게 오픈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주장의 반복처럼 느껴집니다. 또 표본도 불충분하고요.
또한 이 리포트의 주장도 결국 매출 효과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이는 브랜드 자산 구축이 매출 효과가 명확하지 않으면 투자가 필요 없는 영역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브랜드 자산 구축에 들어가는 ROI를 명확하게 따져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마케터, 브랜딩하고 싶다면 오히려 신중하게 인용해야 하는 자료입니다. "장단기 매출 효과를 높인다."는 근거로 리더에게 들고 가면 자기 논리에 자기가 갇힐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매출 얼마나 낼 수 있는데? 얼마나 투자해야 하는데? 그래서 얼마나 매출 만들었는데?" 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브랜딩, 브랜드 자산의 구축, 브랜딩 가이드의 수립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 브랜딩 가이드가 "성과와 효율을 만들어야 하는 마케팅 캠페인"의 how-to-say 를 제약해서는 안 됩니다. 마케팅에서 톤앤매너는 큰 틀에서의 원칙이면 충분합니다. "직관적으로 꽂힌다. 이해 된다. 가치를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등의 대원칙만 잡고, 다양한 메시지 실험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가이드를 만들어 버리면, 시장에서 검증하기 전에 내부 검열에서 먼저 잠재력 높은 메시지들이 사장됩니다.
신생 기업(스타트업)이나 한정된 예산을 가진 기업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는 즉각적인 전환을 위한 성과 광고에 더 집중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딩 가이드의 준수를 요구하지 마세요. 욕심입니다. 아직 신생아이거나, 어린이에게 "너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어법 차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대기업도 실험적으로 브랜드 톤을 벗어나기도 하는 마당에, 스타트업이 멋들어진 브랜드 자산의 구축과 일관된 실행을 고집하면 그건 오만함입니다.
마케팅은 고객과 기업의 상호 가치 교환이라는 걸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고객에게 가치 있고, 고객이 움직일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상응하는 기업가치를 획득해 내는 게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과 장소와 때에 따라 다양한 행동과 말을 실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틀을 일찌감치 정하고, 스스로 굴레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마케팅은 상호작용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있어 보이는 거, 해야 될 거 같은 거 하는 게 아닙니다. 나를 드러내는 말, 멋지게 보이는 말 하는 게 아닙니다. 고객에게 필요한 말, 고객을 움직이게 하는 말을 건네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