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초 vs 3년, 맥도날드 AI의 명암

글로벌 기업들의 AI 도입의 명과 암

by 물병자리

"AI가 주문을 받는다고요?"


드라이브스루 앞에 선 고객이 스피커에 대고 주문을 하자, 화면 너머에서 사람이 아닌 AI가 답변한다. 2021년부터 맥도날드 일부 매장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하지만 3년 후인 2024년 7월, 이 실험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바로 여기에 글로벌 기업의 AI 도입이 왜 어려운지,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37181_136245_1552.jpg


맥도날드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 3만 8천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의 제왕이다. 특히 미국에선 드라이브스루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빠른 서비스와 일관된 품질이 생명인 업계에서, 맥도날드가 AI에 눈을 돌린 이유는 명확했다. 대기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이 팔고 싶었던 거다.


문제는 단순했지만 해결은 복잡했다. 드라이브스루에서 차 한 대를 처리하는 시간을 1분이라도 줄이면, 피크 타임에 훨씬 많은 고객을 응대할 수 있다. 그리고 고객별로 다른 메뉴를 추천할 수 있다면? 평균 주문 금액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맥도날드는 2019년 두 번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3억 달러짜리 베팅


2019년 맥도날드는 20년 만의 최대 규모 인수를 단행한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다이내믹일드(Dynamic Yield)를 약 3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같은 해 음성 인식 스타트업 아프렌테(Apprente)도 인수해 '맥도날드 테크랩'이라는 산하 조직을 만들었다.


왜 직접 개발하지 않고 인수를 택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시간이 없었다. 패스트푸드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고, 고객의 기대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내부에서 천천히 개발할 여유가 없었던 거다. 검증된 기술을 빠르게 가져와서 맥도날드만의 방식으로 다듬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다이내믹일드의 핵심 기술은 머신러닝 기반 개인화 추천 시스템이었다. 시간대, 날씨, 현재 인기 메뉴, 매장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고객별로 다른 메뉴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 오는 날엔 따뜻한 커피를, 점심시간엔 인기 세트 메뉴를, 저녁엔 패밀리 세트를 메뉴판 상단에 띄우는 식이다.


아프렌테는 음성 인식 기술을 보유한 회사였다. 고객이 드라이브스루에서 주문하면 AI가 대신 받아적고 확인하는 '자동 주문 접수(AOT: Automated Order Taking)'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맥도날드는 2021년부터 IBM과 파트너십을 통해 이 기술을 본격적으로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두 기술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개인화 메뉴판은 대성공이었다. 2018년 미국 일부 매장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효과가 입증되자 맥도날드는 속도를 냈다. 드라이브스루 응대 시간이 평균 30초 이상 단축되었다. 30초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엄청난 변화였다. 피크 시간대에 처리할 수 있는 차량 수가 15-20% 늘어난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매출 효과였다. AI가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자튀김 업그레이드 하시겠어요?", "신메뉴 파이 어떠세요?" 같은 맞춤형 제안을 하자, 관련 상품의 추가 구매율이 눈에 띄게 올랐다. 고객 입장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메뉴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아졌다.


성과에 확신을 얻은 맥도날드는 이 기술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의 드라이브스루와 주문 키오스크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시켰다. 현재 일일 1,300만~1,500만 건의 주문에 이 AI가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 15,000개 매장에서 실시간으로 개인화 추천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는 AI 기술의 대규모 상용화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음성 주문 AI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술 자체는 혁신적이었다. 다양한 언어와 억양을 인식할 수 있고, 복잡한 주문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초기 파일럿에서 인식 정확도는 85% 수준에 머물렀다. 20%는 여전히 직원이 개입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고객 불만이었다. 복잡한 주문이나 특이한 억양, 배경 소음 등이 겹치면 AI가 엉뚱하게 인식하는 경우가 생겼다.


소셜미디어에는 웃픈 에피소드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콘 하나 주문했는데 베이컨 버거 9개가 나왔다", "치킨 너겟 20개를 주문했더니 수백 달러짜리 계산서가 나왔다" 같은 사례들이다. TikTok에서는 #McDonalds AI 해시태그로 주문 실패 영상들이 바이럴을 타기도 했다.


AD.37131442.1.jpg


2년간의 테스트 기간 동안 맥도날드는 IBM과 함께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머신러닝 모델을 계속 훈련시키고, 소음 필터링 기능을 강화하고, 고객 피드백을 반영해 시스템을 개선했다. 하지만 고객 만족도를 보장할 수준까지는 끌어올리지 못했다. 결국 2024년 6월, 맥도날드는 "신중한 검토 후 IBM과의 AOT 파트너십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테스트 중인 모든 매장에서 7월 26일까지 기술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전략적 판단의 지혜

흥미로운 건 맥도날드의 대응 방식이다. 개인화 추천 시스템이 성공하자 무리해서 모든 AI 기술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음성 AI는 과감히 접었다. 고객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신기술을 고집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글로벌 기업다운 판단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2021년 다이내믹일드를 마스터카드에 매각한 결정이다. 맥도날드는 2019년에 3억 달러를 주고 인수한 회사를 3년 만에 마스터카드에 매각했다. 기술을 포기한 게 아니었다. 더 전문적인 회사에 맡기고 자신들은 고객사로서 활용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는 매우 영리한 전략이었다. 기술 개발과 유지보수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개인화 서비스는 계속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가맹점주들이 부담해야 할 기술 사용료 문제도 해결되었다. 마스터카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더 정교한 개인화 기술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맥도날드의 AI 도입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조직 관리 방식이다. 단순히 기술만 들여온 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조직과 프로세스를 함께 구축했다.


'맥도날드 테크랩'이라는 전담 조직을 만든 것도 그 중 하나다. 인수한 스타트업의 인재들을 흡수하면서도, 맥도날드의 운영 철학과 결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기술을 단순히 '구매'하는 게 아니라 '내재화'하려는 노력이었다. 또한 가맹점과의 소통도 중요하게 관리했다. 맥도날드는 직영점보다 가맹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구조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가맹점주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확산될 수 없다. 그래서 시범 운영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 수용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였다.


고객 중심적 사고의 힘

맥도날드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고객 중심적 사고'다. AI 기술 자체의 혁신성이나 완성도보다도, 고객에게 실제로 가치를 주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 개인화 메뉴판은 고객에게 명확한 가치를 제공했다. 더 빠른 주문, 개인 취향에 맞는 추천, 새로운 메뉴 발견의 기회를 주었다. 매장 입장에서도 서비스 속도 향상과 매출 증대라는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반면 음성 주문 AI는 기술적으론 인상적이었지만, 고객 경험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주문 실수로 인한 스트레스, 재주문의 번거로움, 예상치 못한 비용 발생 등이 기술의 편의성을 상쇄했다. 고객이 "AI가 주문을 받네, 신기하다"보다는 "AI 때문에 주문이 틀렸네, 짜증나다"를 더 많이 경험한 것이다.


맥도날드는 음성 AI 프로젝트를 중단했지만, AI 투자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다. 2023년 12월에는 구글 클라우드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음성 인식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몇 년 후에는 더 정교한 시스템으로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섣부른 전면 도입을 피하고, 고객 가치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기술이 성숙해지고, 고객 만족도가 보장될 때까지는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다.


세 가지 핵심 교훈

맥도날드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기술 확보는 속도가 중요하다. 내부 개발로 시간 끌지 말고, 검증된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빠르게 역량을 확보하라. 단, 인수 후에는 반드시 내재화 작업을 통해 자사 환경에 맞게 최적화해야 한다. 기술만 사 오는 게 아니라, 사람과 노하우까지 함께 가져와야 성공할 수 있다.


둘째, 작게 시작해서 성과를 본 후 크게 확장하라. 개인화 메뉴판은 2018년 시범 운영에서 효과가 입증되자 글로벌로 빠르게 확산시켰다. 음성 AI는 2년간 테스트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과감히 중단했다. 이런 단계적 접근이 리스크를 관리하는 핵심이다. 'Fail Fast, Learn Fast' 원칙이 여기서도 통했다.


셋째, 고객 경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AI 기술 자체가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고객에게 실제 가치를 주지 못하면 실패작이다. 30초 시간 단축과 맞춤 추천으로 긍정적 경험을 준 기술은 살아남았고, 주문 실수로 불편을 준 기술은 사라졌다. 기술의 완성도보다 고객의 만족도가 우선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준 사례다.


맥도날드는 AI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고객이 원하는 것, 비즈니스에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만 골라서 적용했다. 그리고 안 되는 건 과감히 포기했다. 결국 AI 도입의 성공 여부는 기술의 복잡함이나 투자 규모가 아니라, 고객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가치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맥도날드가 3억 달러를 들여 배운 이 교훈은, 지금 AI 도입을 고민하는 모든 기업에게 값진 가이드가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포니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