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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Dec 14. 2015

여왕이라 불리는 산

스위스 루체른 리기산 트레킹

특정분야의 최고는 '왕' 혹은  '여왕'이라는 호칭과 함께 사람들의 존경과 존중을 받는다. 사람으로 치면 마이클 조던이 그랬고, 김연아가 그랬다. 동물로 치면 사자가 그럴 것이다. 이들은 한 때 각기 농구와 피겨와 동물을 대표했다.


여기 여왕이라 불리는 산이 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리기산이다 (Rigi).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산 중  '여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산은 리기산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여왕이라고 불리는 걸까? 그 전에 우리는 우선 '여왕'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구글에서 '여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얻어낸 이미지 검색 결과다.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씩 다르겠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나열해보면, 우아함, 고귀함, 고풍스러움, 아름다움, 화려함 등일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서 따온 감정이 아닌 일반적인 감정을 떠올려보면, 온화함, 친근함, 포근함, 모성애 등이 되겠다. 


그렇다면 산들의 여왕 리기산은, 여왕이 갖고 있는 이러한 일반적인 속성을 담고 있는 산일 것이다. 적어도 이런 일반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산들 중 최고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직접 확인해보자.


http://www.ttearth.com/

리기산은 스위스 루체른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대부분 루체른에서 출발하는데 중앙역 근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베기스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거나 피츠나우에 내려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간혹, 루체른 중앙역에서 열차를 타고 아르트 골다우까지 간 뒤 거기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람선-피츠나우 산악열차 코스를 애용한다. 


아름다운 루체른 호수를 더 오랫동안 관람할 수 있고 피츠나우에서 타고 올라가는 산악열차 안에서 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유람선을 타고 피츠나우에서 내려 산악열차를 타고 리기산에 올라갔다.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빨갛고 예쁜 열차가 바로 리기산까지 오르는 산악열차다. 열차 뒤편으로는 거대한 높이의 리기산이 단단하게 버티고 서있다. 


이런 종류의 여행기에 항상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좌석의 앉는  방향'인데, 이 열차의 경우 올라가는 방향의 왼쪽에 앉는 것이 조금 더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산악열차가 정차 중인 플랫폼 왼쪽에는 'the first montain railway in  europe'이라는 유서 깊은 자랑거리임을 나타내는 글귀가 눈에 띈다. 여기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 있는 소개글로 대신한다.

1871년 5월 21일 유럽 최초의 산악 열차가 개통된 곳이다. 아르트-골다오(Arth-Goldau) 역과 비츠 나우(Vitznau) 역을 연결하는 랙 철도(리기 철도(Rigi-Bahnen)에서 운영함), 베기스(Weggis)에서 리기-칼트바트(Rigi-Kaltbad)를 연결하는 곤돌라 리프트, 크레벨(Kräbel) 역에서 리기-샤이데그(Rigi-Scheidegg) 역을 연결하는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차창 밖 풍경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어느 정도 열차가 고도를 확보하면, 멀리 평화롭고 고요한 루체른 호수의 전경이 보이고, 가파르게 기울어진 리기산 중턱에는 전망 좋아 보이는 예쁜 집들이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높이에 올랐을 때 한 순간 구름을 통과하게 되고, 이내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알프스 산맥이 거대한 병풍과 같이 순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아래에 짙게 깔린 구름의 모습이 제법 장중하다.



리기산의 높이는 1,798m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프스의 고봉의 반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역시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언가 높이가 주는 친근함이 있다. 만약 리기산의 높이가 해발 4,478m인 마테호른과 비슷하다면 우리는 그 높이가 주는 위압감에  무언가 범접하기 힘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열차는 리기산을 오르며 많은 역을 지나간다. 리기산을 도보로 오르고 내리다가 힘들면 역에서 쉬거나 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리기산 정상에 거의 다다를즘이면 창 밖으로 저 멀리 아름다운 루체른 호수와 호숫가 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숨이 막힐듯한 풍경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쓰이리라. 



열차는 곧이어 리기산 정상에 있는 마지막 역에 도착한다. 역에서 내리면 맑은 공기가 제일 먼저 느껴지고, 고개를 돌리면  발아래에 펼쳐진 알프스의 고봉과 구름이 드리워진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역의 높이는 1,750여 미터. 역에서 5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리기산의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성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리기산을 느껴보자. 



리기산 정상 역에는 재미난 이정표가 하나 있다. 이 곳을 다녀온 여행객들이 하나같이 사진에 담아오는 것인데 대부분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것은 정상 전망대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인데, 젋은이가 가리키는 길은 170m에 불과하지만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이고, 노인이 가리키는 길은 270m 정도 되지만 상대적으로 완만하여 오르기 쉬운 길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센스. 나는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길로 올라갔다. 조금 돌아가기는 해도 리기산의 풍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안내한 길을 따라가도 금방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천천히 올라가며 주변을 돌아보면 위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완만하고 부드럽다. 모든 것을 품에 안을 듯한 모습이다. 과연 여왕의 기품과도 비슷하다.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 중 '여왕'이라고 불리는 용눈이 오름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완만한 형세가 부담이 없어 쉬이 사람들을 포용하며, 정상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너무나도 포근하고 아름답다. 



산 정상의 전망대.  비록 고도는 낮다 하여도 정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언가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리고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를 보고 있으면 겸허해지고 겸손해지는 느낌도 받는다. 



산 정상에는 전망대 외에도 송신탑이 있다. 멀리서 볼 땐 그리 커 보이지 않았으나 가까이 다가가니 굉장히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송신탑 뒤로는 리기산의 반대편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풍경이다. 사진은, 실제 풍경의 1/100도 담아내질 못했다. 


내가 리기산 정상이 보여주는 풍경에 넋을 잃고 있을 즘 누군가가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시간과 체력만 여유있으면 산악열차보다는 저렇게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여왕의 품을 온전히 느끼는 방법 이리라..



리기산의 가장 아름다운 포토 포인트. 깎아지를듯한 절벽 아래로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계곡 마을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산세가 완만하여 보기에 무척 편안하다. 


정상을 충분히 구경했으면 이제 내려가는 일이 남아있다. 내려가는 방법은 정상 역에 도착한 산악열차를 타고 편히 내려가는 것과 걸어 내려가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시간과 체력이 남는다면 후자를 권유하고 싶다. 리기산이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를 훨씬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왕 여왕 가까이 온 거, 얼굴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손도 잡아보고 감히 품에도 안겨봐야 하지 않을까..



리기산 정상에서 역으로 돌아오자 마침 도착한 열차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삼키고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정상에 있는 역엔 기념품 가게도 있는데 꽤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으니 열차를 기다리며 구경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상에 있는 역을 뒤로 하고 튼튼한 다리를 믿고 내려가 보기로 한다. 리기산은 산세가 완만하여 가파르고 험한 길 없이 편히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산악열차 역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이 들거나 시간에 쫓긴다면 바로 열차를 타면 된다. 


내려가면서 올라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가족단위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겐 그저 동네 뒷산일 스위스의 리기산. 가까운 곳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산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축복이다. 



아무리 낮다고 얘기는 하지만 그건 다른 알프스 고봉에 비해 낮은 것이고 1,798m의 높이는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기후가 변한다. 내가 찾아갔을 때만 해도 다행히 날씨가 맑아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지만, 다른 여행기에서는 정상에 올라 뿌연 안개와 구름만 보고 왔다는 글도 많다. 그러니 리기산 등반에서 정말 중요한 건 바로 날씨. 등산 전 날 반드시 날씨를 확인하자. 



리기산이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걸어내려 가야 (혹은 올라가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저 산악열차 혹은 케이블카 안에서는 여왕의 품성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완만한 산등성이 너머로 스위스 미텔란트(Mittelland) 지방의 여러 호수와 날씨가 좋으면 독일과 프랑스까지 보인다 하니 과연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여왕의 너른 가슴 마음 여유를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광활하다 라는 표현도 맞는 것 같고..



트레킹 루트는 열차 선로를 따라 이어진다.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다만, 아무리 산세가 완만하다 해도 가끔 가파른 길도 나오고 특히 겨울에는 눈이 녹지 않은 길도 있으니 편한 옷과 미끄러지지 않은 신발은 필수다.  몸은 힘들지 않고 눈은 즐거우며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이 바로 리기산 트레킹



중간중간 마주치는 역과 가정집. 이런 곳에 집을 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야말로 연을 벗 삼은 이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지상으로 향하는 보행길..



산 정상에서 중턱으로 내려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 부근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 12월의 한 겨울에도 푸릇한 모습을 즐길 수 있는 리기산.


여기서부터 가정집이 더욱 많이 눈에 뜨이고 간혹 B&B 용도로 쓰이는 곳도 나타난다. 이런 곳에서 머물면 몸도 마음도 전부 한없이 착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약 한 시간을 내려왔는데 아직도 지상은 요원하여 하는 수 없이 리기 칼트바드 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막 떠나기 직전의 케이블카를 탑승.. 케이블카  명당자리는 나이 드신 분들이 이미 차지. 약 한 시간 여를 이미 걸어내려 왔지만 케이블 카를 타는 지점의 높이도 상당했다. 게다가 저 경사는 내려가는 건지 떨어지는 건지 모를 정도. 하지만 보는 것 과는 달리 상당히 안정적으로 내려간다 : )



지상에 도착한 뒤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가는 유람선을 타면 된다. 산들의 여왕, 여왕이라 불리는 산, 스위스의 RIGI.. 거대한 자연의 포근한 품을 느끼고 싶으면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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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

http://lainydays.tistory.com/714 (루체른에서 리기산 가는 풍경)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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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ainy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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