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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May 23. 2016

카오산로드는 자유다

배낭여행의 성지 카오산로드

성지(聖地)


[명사] <종교>  1.특정 종교에서 신성시하는 장소. 종교의 발상지나 순교가 있었던 지역으로 기독...  2.종교적인 유적이 있는 곳.


여행이라는 종교가 있다면 아마도 방콕의 카오산 로드는 그것의 발상지 정도 되지 않을까? '카오산 로드'는 방콕의 올드씨티 방람푸 지역에 있는 길이 약 400m의 좁은 거리에 붙은 이름이다. 태국식으로 표현하면 타논 카오산. 때문에 택시 기사들에게 카오산 로드라고 하면 잘 못알아듣곤 한다.


이 작은 거리에는 수식어가 여러개 붙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불리는 것은 바로 '배낭여행의 성지'다. '성지'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배낭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카오산 로드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된다.


도보로 약 10분 정도 소요되는 400m 남짓 작은 거리 카오산로드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자 성지, 방콕 여행의 시작이자 끝, 카오산 로드의 매력을 낱낱히 파헤쳐보자. 카오산로드도 안가보고 방콕을 다녀왔다 논하지 말지어다.



광장은 수렴하고 거리는 흐른다


유럽은 광장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로마의 스페인 광장,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파리의 콩코드 광장, 벨기에 그랑플라스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광장이 도시마다 하나 쯤은 있으며 심지어는 작은 마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광장의 기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옛날 로마시대 전쟁에서 이긴 장군이나 황제를 환송하기 위한 곳이라는 설, 그리스 시대 토론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작은 공간이 그 시초라는 설, 종교시설(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자제를 부수고 난 뒤 생긴 공터가 그대로 광장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수 백 수 천 년간 내려온 광장문화는 이제는 유럽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일종의 습관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되었다.


광장과 거리의 차이


광장에는 응축되고 퍼지는 힘이 있다. 중앙에는 항상 무언가를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나 동상, 혹은 시원한 분수가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광장은 둥글게 혹은 네모난 모양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둘레를 음식점이나 호텔들이 둘러싸며 방사형처럼 광장 둘레 곳곳에 이어진 길을 따라 사람들이 중앙으로 모여들거나 흩어진다. 덕분에 광장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좋다. 누군가를 환송하거나 누군가와 토론하기 위한 장소로는 최적이며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참여하기 좋은 장소이다.


유럽의 유명 광장의 모습. 사람들은 광장을 향해 '모인다'


상대적으로 동양은 광장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요즘에 와서야 광화문 광장, 시청앞 광장 등 도시 여기저기에 유럽의 그것을 본뜬 광장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으며 그 곳에서 각종 행사와 집회, 시위 등을 여는 등 능동적 참여와 행동을 유도하곤 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동양은 광장문화가 아닌 거리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인사동길, 삼청동길, 가로수길, 북촌, 서촌 등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전부 '거리'다. 거리는 광장과 무엇이 다를까. 광장이 모이고 정체되고 응축되는 힘이 있다면 거리는 순환하고 흐르고 시시각각 변하는 매력이 있다. 인위적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멈추게 하는 힘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며 '이런듯 어떠하고 저런듯 어떠하리'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


신촌의 연세로 길없는 거리. 사람들은 거리를 '흐른다'
상하이의 대표적 보행자거리 난징동루


카오산 로드도 마찬가지의 매력을 갖고 있다. 중간중간 좁은 골목길이 가지치기 하듯 나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도로의 양 옆에 있는 큰 입구를 중심으로 거리는 항상 무언가가 쉬지 않고 흐른다. 입구에서 카오산 로드를 바라보면 혼란도 이런 혼란이 없다. 사람과 가게와 상인과 물건과 간판과 자동차 등이 복잡하게 얽혀 보는이의 눈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몇 걸음만 내딛다보면 당신 역시 금세 이 혼란 속 일부가 되며 일정한 규칙과 법칙을 발견하고 이내 흐름에 편승하게 될 것이다. 용기를 내어 입구를 지나면 이내 곧 카오산로드의 첫번째 매력에 빠지게 된다.


길거리음식의 천국, 거대한 푸드코트 카오산로드


방콕은 미식의 나라 답게 길거리에서도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을 것 같은 협소하고 외진 골목에도 어김없이 길거리 음식점이 나타나고 그 주변엔 손님이 있다. 방콕 시내 여기저기에 퍼져있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한번에 즐기고 싶다면 카오산 로드로 가자. 방콕 시내의 모든 길거리 음식이 모인 거대한 푸드코트니까.


카오산 로드 곳곳에 있는 팟타이 노점상. 싸고 맛있다.


카오산 로드에 처음 와본 사람도 어디가 입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힌트가 있다. 바로 각종 길거리 음식 노점상들이다. 이들은 주로 해가 저무는 시점에 입구에 진을 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각종 야채를 볶는 냄새가 멀리서부터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고 입을 허락하지 말자. 카오산 로드는 이제 막 시작했고, 당신 앞에는 더욱 다채로운 먹거리들이 펼쳐질 예정이니까.


길에서 팔린다고 무시하지 말자. 충분히 시원하고 맛있다.


카오산로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는 바로 팟타이가 있다. 국수와 계란, 새우와 닭고기, 두부 등을 넣고 고명으로 고수나 라임, 으깬 땅콩을 넣은 태국의 대표적 볶음면요리로 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 사랑을 받는 음식이다. 그런 음식을 이 곳 카오산 로드에서는 단 돈 천 원에 즐길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맛있는 팟타이를.


별 다른 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조리법이 간단하기 때문에 관리도 쉽고 각종 재료를 볶는 과정과 향기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길거리 음식으로 제격이며, 나름 다양한 세트메뉴를 구성하여 고객을 모으고 있다. 가장 간단한 팟타이+에그 세트는 단돈 30바트(한화 약 1,000원)에 먹을 수 있으며 나름 고급진 세트인 팟타이+에그+새우+치킨 세트는 단돈 70바트(한화 약 2,4000원)이면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


팟타이와 과일주스 말고도 즐길거리는 많다.


카오산로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음식 중 하나는 바로 음료다. 사시사철 더운 나라 방콕에서는 수분보충이 매우 중요한데 다행히 방콕 곳곳에서 시원한 과일쥬스를 판매한다. 길거리 음식이라 생각하고 그 맛을 무시했다간 정말 큰코 다칠 지경으로 신선하고 시원하며 맛있다. 300~500ml 과일 쥬스는 대략 30바트(한화 약 1,0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수박주스나 망고주스를 추천한다. 이 외에도 카오산 로드에서는 각종 꼬치와 닭 혹은 돼지고기 구이 요리, 심지어는 고단백 튀김요리인 벌레까지 볼 수 있다.



가볍고 간단하게 즐기는 타이 미용, 뷰티로드 카오산


맛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속을 든든히 채웠으면 이제는 겉을 꾸며보자. 카오산로드에서는 싼 가격으로 가볍게 내몸을 가꾸고 치장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사지다. 카오산 로드 한 가운데에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끄는 가게가 하나 있는데 바로 대형 마사지샵 찰리(charlie)다. 가게 바깥에 간이침대가 족히 50여개는 되는데 침대 마다 사람들이 누워있고 그들을 1:1로 마사지하는 마사지 사들이 서 있는 것이 멀리서 봐도 장관이다.


마사지 가격과 시간이 굉장히 부담 없다. 타이마사지 30분에 150바트(한화 약 5,000원), 발마사지 30분에 150바트, 오일마사지 30분에 180바트 밖에 하지 않는다. 카오산 로드에 있는 다른 마사지샵에 비해 체계적이고 저렴하기 때문에 가볍게 내 몸을 맡기고 쉴 수 있다. 몸이 조금 더 피로한 사람이라면 한 시간 코스를 받으면 된다.


카오산로드에 있는 거대 마사지샵. 금액과 시간대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카오산 로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미용은 바로 헤나. 진피층에 잉크를 주입해서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타투와는 달리 염색제를 이용해서 피부나 피하조직에 그림을 그리는 헤나는 물로도 쉽게 지워지며 보름에서 한 달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때문에 타투는 부담되고 한 번쯤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할 수 있는 것이 헤나이다.


카오산 로드에서는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몸에 헤나를 새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짧은 문구나 그림은 200~250바트 정도 소요되고 손바닥 정도 크기의 그림은 300바트 정도 소요된다. 다양한 디자인의 헤나 간판을 걸어둔 노점상이 많으며 한글로 한국인을 모객하는 가게도 많으니 한 번쯤 용기내어 시도해보자. 이상하게 외국을 나가면 한국에서는 하기 힘든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의 일탈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낯선 곳에서는 그렇게 낯선 용기가 생긴다.


편한자세로 머리를 손질 중
헤나뿐 아니라 문신을 새겨주는 가게도 있다



이 외에도 카오산 로드에서는 자신의 머리를 맡긴채 간이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터 앉은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드레드나 레게파마를 하려는 사람들이며 매니큐어나 페디큐어를 받기 위해 길가에서 아무렇게나 서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정해진 절차도 없고 차려야 할 격식도 없는 분위기 속에서 각자가 원하는 바를 손님은 손님대로 점원은 점원대로 행하고 얻는다. 이게 정말 잘 돌아가는걸까? 싶으면서도 잘 돌아가는 곳, 바로 카오산 로드.



거대한 의류 쇼핑몰, 카오산로드


이런 종류의 거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쇼핑이다. 카오산로드에서는 다양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태국에 가면 반드시 구입한다는 코끼리 바지다. 헐렁헐렁하고 얇은 원단이 입은듯 안입은듯 착시를 주는 통풍 잘되는 코끼리 바지는 카오산로드에서 한 벌에 2,000원이면 살 수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을 생각하여 여러 벌 구매하면 흥정이 가능하여 더욱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싼 맛에 입는 거니까 품질은 생각하지 말자. 옷 한 벌에 단돈 몇 천원도 하지 않는다. 카오산 로드 뒤쪽으로 갈수록 옷가게는 더욱 많아진다. 명품 속옷이나 유명 축구팀의 유니폼 등도 있는데 물론 짝퉁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재미삼아 한 번쯤 사서 싸게 입어볼 법 하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카라티나 I love bangkok 티셔츠 값싼 실크로 만든 옷 등이 있다. 흡사 명동의 길거리 옷가게를 보는 것과 같다.


태국과 방콕에 가면 꼭 사야하는 코끼리바지. 안입은듯 착용감도 좋고 시원하다
아름다운 인테리어 소품도 판매중


또한 카오산로드에서는 아이디어 상품들도 볼 수 있는데 캔으로 만든 가방이나 천으로 만든 가방, 쌀포대로 만든 가방이나. 그 외 짝퉁 티가 나지만 재미삼아 구입해봄직한 옷들도 많이 있다. 다만, 정말 기념품으로 고를 만한 아이템이 많길 바란다면 카오산 로드보다는 짜뚜짝 시장이나 아시아티크를 선택하자.



자유로움의 근원, Pub


카오산 로드는 단순히 북적이고 혼란스럽기만 한 곳이 아니다. 이 곳은 즐겁고 흥겨운 기운이 거리 곳곳에 넘쳐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바로 길 양 옆에 늘어선 Pub이다. 카오산로드 곳곳에는 가볍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Pub이 있다. 쿵짝쿵짝 시끄러운 음악을 울리는 가운데 가게 앞 노천에 수십 개의 테이블을 깔아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가게는 세련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테이블과 의자는 불안정하게 흔들거린다. 음식이 맛있지도 않고 맥주도 편의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둑해지면 텅 빈 테이블에도 하나 둘 손님들이 앉기 시작하고 금세 북적인다.


혼자와도 좋다. 친구와 함께여도 좋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곳


남녀노소 국적 불문하고 모두가 앉아 가볍게 맥주 한 잔을 즐기는데 한 겨울에도 밤기온이 30도를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 시끄러운 음악과 휘왕찬란한 가게 꾸밈새를 자랑하는 가운데 뒤섞인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시끄럽고 난잡하거나 문란한 것이 아니라 흥겹고 즐거운 기운으로 가득차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너무나도 자유로운 그 분위기는 쉽게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다.



카오산로드에 갈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밤에 와볼 것이며 밤에 와본다면 시간을 내어 아무 pub에나 가서 반드시 길가 자리에 앉아 가볍게 맥주 한 잔 시켜놓자. 아무런 할 말이 없어도 좋다. 아무런 할 일이 없어도 좋다. 그냥 거기 앉아서 그 공간에 녹아들고 참여하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분위기에 취해보자.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자유가 당신의 맛있는 안주가 되리.


melting pot 카오산로드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오산로드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 아닐까. 카오산로드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아니다. 때문에 짐을 가득 실은 거대한 픽업 트럭조차 개의치 않고 지나다닌다. 혼란속에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늘어만 간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온걸까?



수십 수백가지 인생이 한 공간에 뭉개진다. 다채로운 인종과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뒤섞인다. 동양인 서양인 따위의 이분법적 구분은 무의미하며 그저 누가 되었든 이 거리를 흐르는 또 하나의 사람일 뿐이다. 내가 지나친 도로는 뒤돌아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다. 나는 이런 난잡스러운 분위기가 정말 좋다. 유럽에서 그토록 좋다고 부르짖은 노천 테이블에서 자유롭게 마시는 분위기와는 또 사뭇 다르다.



한 눈 팔지 않고 걸으면 겨우 10분이면 통과하는 거리지만 이 길을 10분만에 통과하는 사람은 없다. 워낙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찬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카오산로드에 가기 전까진 '배낭여행의 성지'라는 다소 거창한 타이틀에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라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인데 몇 걸음 채 떼기도 전에 두 손 높이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분위기의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한 가지로 압축하여 표현하긴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단 한가지로 표현하라면 '자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좁다란 짧은 거리속 수많은 인파와 상인과 가게와 손수레와 자동차와 간판과 음악과 음식과 각종 상품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아무리 편한 옷을 입고 가도 왜인지 단추 하나를 더 풀게 만드는 분위기의 매력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사랑하고 동경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카오산로드는 사랑을 받을 것이다.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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