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iny Sep 28. 2019

상하이 근교로 떠나는 시간여행

수향 마을 시탕을 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중국 상하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과거만을 간직한 채 현재에 머물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바로 수향 마을 시탕이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몇 년 전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이 되면서(톰 크루즈가 막 지붕 위와 길거리를 휘젓고 돌아다니는 바로 그 장면 그 마을)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상하이 근교에는 대표적인 수향 마을이 6개나 있다. 대부분 저우장을 주로 많이 가는 것 같은데 나는 시탕을 선택했다. 6개의 마을 중 가장 상업화가 덜 진행된 곳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도시 마을 여행지를 가든 일단 유명세를 타고나면 예전의 모습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요즘에도 자주 가는 제주도가 특히 그런데..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거대 자본이 들어오고 육지에서나 보던 세련된 카페와 프랜차이즈 음식점 그리고 각종 리조트들이 주요 자연 풍경지 혹은 명소에 속속 들어서는 걸 보고 이제 날것의 제주는 더 이상 보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변화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어쨌든 상업화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시탕을 선택한 것은 정말 탁월했다. 상하이 여행 중 상하이보다 더 기억에 남았으니까. 상하이에서 시탕까지 가는 방법은 총 3가지가 있다. 기차를 타거나 투어버스를 타거나 시외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는 경우 상해기차역이든 상해남부역이든 가서 기차를 타고 시탕 근처 역까지 간다. 그리고 거기서 또 버스나 택시를 타고 시탕까지 가야 하는 게 번거롭다. 그래서 대부분 투어버스를 이용한다. 편리하니까.


상해 집산 여유 중심이란 곳에 가서 투어비만 내면 버스가 알아서 시탕 입구까지 태워주고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어 번거롭게 티켓팅을 하지 않아도 되며, 정해진 시간 내에 입구로 돌아오면 다시 상하이까지 편하게 태워준다.


하지만 각종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내 여행 내 맘대로.


시외버스는 자유도가 높은 대신 난이도도 높다. 일단 상해남역에서 내려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자. 이곳에서 시탕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대략 2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탕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꼭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자. 잘못하면 시탕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시탕 입구까지 데려다 주지만 시외버스를 이용한다면 시탕 입구까지 또 혼자 가야 한다. 이게 싫다면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대기 중인 인력거를 이용해보자. 시탕 입구까지 편히 데려다준다. 시탕 입구에서는 시탕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표를 팔고 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시탕 가이드맵이다. 마지 인천 부평역 지하상가 가이드맵을 보는 기분이다. 맘을 편히 먹으면 된다. 시탕이 크지 않아서 몇 번 좀 헤매거나 봤던 곳 또 본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니면 된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시탕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를 찾아보자.



신경 쓰지 않으면 자칫 그냥 지나 칠정도로 작은 입구를 들어가면 또 사람 세명 겨우 나란히 걸을만한 좁다란 골목길이 나온다. 그 안으로 쭈욱 들어가면 그제야 비로소 '시탕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티를 내는 듯 중국 특유의 향이 나를 반긴다.


취두부 향이다. 누군가에겐 천하제일 맛이라는데 비 위약한 초등학생 입맛인 나에겐 절대로 절대로 피해야 할 음식 1순위다.



더디게 진행된 상업화 덕분에 이곳을 왔지만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딱히 그렇지도 않아?라는 것. 다른 수향 마을을 가지 않아 비교는 어렵지만 더 진행되기 전에 와 본걸 다행이라 생각..



잘 개발된 도시보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중국 특유의 독특한 음식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나에게 중국 로컬 음식은 그림의 떡일 뿐. 한자 문맹인이라 안정적인? 음식을 고르기 위해선 순전히 시각과 후각에 의존해야 했는데 그 둘 다 마비시키는 것이 중국 음식들 (비하는 아닙니다. 제 비위가 약해서일 뿐..)



시탕은 참 불친절하다. 길이 곱지도 않고 흔한 안내판도 없다. 여기저기 골목길도 많아 헷갈린다. 지도를 잘 보고 길을 잃지 않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선 무용지물이었다. 몇 번을 제대로 가고 있나 확인하려고 지도와 핸드폰을 이용해봤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기로 한다.



중국의 어느 시골마을이라고 뭔가 더러운 분위기만 생각해선 안된다. 이렇게 깔끔하고 예쁜 카페? 도 많다. 이런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도 많고. 어떤 곳은 삼청동? 인사동?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의외로? 깔끔한 가게들은 사실 옛 모습을 걷어낸 상업화의 증거라 할 수도 있을까..


뭘 보냐 닝겐


좁디좁은 골목길 입구에서 마을의 중심부로 계속 걷다 보면 상상했던 그 '수향'마을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낡고 지저분하고 기와집에 이곳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냥 날 것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 말이다.


마을의 입구는 완벽한 관광지였지만 더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어느새 일상이 파고들어와 누군가에겐 여행지가 되고 누군가에겐 삶이 터전이 되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피해 뚜벅뚜벅 걷다 보니 어느새 시탕 마을의 끝까지 도달했다. 아치형 다리 밑으로 보이는 것이 마을의 경계인가 보다. 아치형 다리는 언제 봐도 예쁘다. 수향 마을인 만큼 마을 여기저기에 다리가 놓여있는데 하나하나 그 모양새가 각각 다른 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을의 끝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가보지 못한 구석구석을 향해본다. 시탕에는 의외로 흙속의 진주처럼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이 많다. 하나하나 소개하진 못해도 사진으로 그 분위기를 느껴보저



그중에는 시탕 마을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illy 커피숍도 있다. 마을 2/3 지점에 있는데 덥고 습한 수향 마을의 날씨에서 벗어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맛이 검증된 일리 커피와 함께 마을 경치를 즐기며 쉬기 좋은 곳이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랄까.. 굉장히 깔끔한 인테리어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커피맛도 생각했던 그래로의 퀄리티였고 분위기도 깔끔했다. 마침 사람도 없었고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평화로웠다.


아침에 시탕으로 출발한 뒤 정말 수 시간만에 제대로 앉아서 쉴 수 있었다. 향긋한 커피와 아늑한 테라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풍경들 정말이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비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돌아다니기가 편해진다. 시탕은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본다. 발걸음이 빠른 사람이라면 대충 두 번은 돌아볼 시간. 시탕도 어느 정도는 관광지에 시장 성격을 띠고 있어서 상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배에 올라타 물 위의 각종 부산물을 걷어내는 아저씨, 주방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요리사, 시탕 내에 있는 숙소를 찾아 헤매는 여행객, 고단한 일상 중 잠시 쉬어 어딘가를 바라보는 여인,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매력들로 가득 찬 시탕의 골목골목. 조금 더 시탕 일상의 정취를 느껴보자.



흐드러진 버드나무 가지, 높고 커다란 아치, 그 아래를 지나가는 여행객을 태운 배와 낡은 가옥

이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는 강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피하면 이렇게 여유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낡았지만 참 예쁘게 구며 놓았다.



시탕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또 마주치는 길거리 음식. 소시지와 육포 같은 느낌. 정말..손이 막 끝까지 뻗쳤지만 끝내 시도해보지 못한. 정체불명의 음식들이 많았다. 내가 다른 나라에 있긴 있구나.. 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 아마도? 물고기 모양의 딤섬까지.



시탕에는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들도 많다. 표정에서 피곤함이 느껴진다. 너희의 삶도 뭔가 고되보이는구나.. 슬슬 시탕과 이별할 시간이 다가온다. 충분히 이 곳의 멋에 젖어든 상태



중국 여행에서 가장 중국스러움을 느꼈던 곳 북적이는 에너지와 한가로운 여유를 동시에 느낀 이 곳 여행지이기도 하고.. 일상이 존재하는 곳. 몇 년 뒤 이곳을 다시 찾게 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나. 과도한 상업화로 이 곳만의 매력이 없어지지 않기를.


늦은 오후로 향해가자 사람들로 더욱 북적인다. 느낌을 보니 낮보다 밤에 더 재미있는 공간이 되는 것 같다. 다음에 온다면 1박을 해볼까 라는 생각도 든다. 돌아가야 할 시외버스 시간이 다가와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 처음 들어왔던 좁은 골목으로 다시 나가본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게 여행이지,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여행이 아닐것이다. 상하이 여행에서 한나절 정도 여유가 있다면 근교 수향마을 시탕을 꼭 다녀와보자 


Words by lainy..

















이전 13화 상하이의 진주, 동방명주를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