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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29. 2019

편하게 구경하는 홍콩의 소호

(feat.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세상은 넓고 갈만한 여행지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을 세 번째 다녀왔다. 누군가에는 한 번도 가지 않은 여행지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수 십 수 백번 드나드는 그야말로 제 집 같은 여행지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해외의 어느 도시를 세 번째 갔다는 건 나름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여행지도 제주도를 제외하면 세 번 이상 방문한 곳이 많지 않고 세상천지에 널린 게 여행지며 안 가본 곳들도 수두룩 한데 왜 하필 홍콩은 세 번째 방문일까?


단순히 홍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도 있겠지만 가까운 비행거리와 익숙한 문화권,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행기 표와 반일 감정 등 여러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다.


홍콩을 처음 갔던 2009년에는 3박 4일 동안 무리하게 돌아다니며 홍콩의 이곳저곳을 탐했다. 두 번째 갔던 2013년에는 상대적으로 부담을 내려놓고 첫 방문 때 인상 깊었던 곳을 한 번 더 가거나 그때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봤다.


세 번째 방문한 홍콩은 아무런 계획 없이 사전 준비 없이 홍콩 땅에 발을 내디딘 후부터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이미 홍콩 대부분의 볼거리는 첫 번째 방문과 두 번째 방문 때 다 가보았고 새로 갈만한 관광 포인트도 없었다.


"이걸 꼭 봐야만 해"라는 여행지에서만 받을 수 있는 특유의 압박감이 없다. 놓쳐도 못 봐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돌아다니는 것.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이런 자유로운 생각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매번 홍콩에 갈 때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이번엔 마카오를 통해 홍콩으로 들어가 본다. 마카오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대략 한 시간 남짓이면 홍콩에 도착한다. 사실 '또다시 홍콩' 이란 생각에 시큰둥했지만 센트럴의 높다란 빌딩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또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와.. 어쨌든 다시 홍콩에 왔구나?'



페리 터미널을 빠져나와 센트럴 시내를 걸어본다. 조금 과장하면 집에 온 느낌 일랄까? 여행지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쉽지 않다. 세 번째 오다 보니 지난번에 봤던 ooo는 잘 있을까? oo는 아직도 팔고 있으려나? 마치 맡겨놓은 듯 안부부터 확인하는 모습이란


이번 여행의 중심은 단연 마카오였고 홍콩에 머무는 일정은 단 하루여서 어디를 갈지 딱히 정해놓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 이미 두 번 방문한 터라 주요 여행지는 다 돌아보았고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일단, 소호를 가보자.



좁고 기다란 낡은 빌딩이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풍경은 홍콩의 상징과도 같다. 처음 홍콩에 왔을 땐 정말 충격과도 같았던 장면이었지만. 땅덩어리는 좁고 사람은 많으며 집값이 비싸 쉬이 재건축이 되지 않는 우리네 풍경과도 닮아있다.



어수선함과 분주함이 공존하는 것도 홍콩만의 매력이다. 무릇 여행지에 가면 여행자만의 여유가 느껴져야 하는데 홍콩은 도시 전체가 항상 바쁘게 움직인다. 사람도 차도 공기마저도. 세계 최고의 초고밀도 도시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낮이든 밤이든 단 한 치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서울의 택시는 몇 년만 지나면 새 것으로 교체가 되는데 이 곳의 택시는 몇 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나 지금이다 별 다를 바가 없다. 뭔가 불편해 보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선 익숙해서 반갑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10년 전 방문했을 당시 홍콩의 택시다. 10년의 간극이 있는 사진이나 택시는 여전히 그대로다.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을 홍콩에서 처음 봤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다큐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봤을 때 저런 게 지금도 굴러다니는구나 싶었다. 이후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종종 보다 보니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도로 위에서 사람과 자동차와 트램이 뒤섞여 사고 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오랜만에 익숙한 홍콩 풍경을 보며 감상에 젖을 때쯤 우연히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입구를 발견한다. 10년 전 홍콩에 처음으로 도착해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그렇게 기를 썼을 땐 잘 보이지도 않던 입구를 이렇게나 쉽게 발견하다니 한편으론 허탈하기까지 했다. 역시 모든지 힘을 빼야 하나..


미드레벨 엘리베이터는 관광상품이 아니다. 워낙 언덕 경사가 심한 곳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홍콩 시민들의 편한 이동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왜 내려오는 사람은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심오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손쉽게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장점 외에도 편하게 소호를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마치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기분으로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기대어 이곳저곳 보다가 여기다 싶으면 내려서 구경하면 된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요새 SNS에서 유명해진 핫플을 찾아가 본다. 별 거는 아니고 일종의 벽화 거리인데 인*타용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다. 센스 있는 벽화는 많지만 그냥 지나가다 들를 정도지 일부러 보러 올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봉이 김선달이 생각난다.



SNS 핫플을 보고 다시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한다. 올라가는 도중 마주치는 소호의 풍경들. 처음 홍콩에 왔을 땐 소호도 굉장히 신기했는데 요새는 서울도 못지않게 예쁜 거리와 카페, 그리고 맛있는 음식점이 많아져서 크게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홍콩 방문 세 번째 만에야 비로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완주해본다. 정상까지 도착한 후 계단과 다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소호 지역을 쭉 훑으며 내려가 본다.



사진 중앙에 지붕처럼 덧씌워진 것 아래에 보이는 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다. 정말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모습. 정상에서 내려갈 땐 좁은 계단을 이용해 본다. 올라올 땐 천국이었으나 내려갈 땐 지옥이 펼쳐지기도 하는 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의 특징.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도 소호 특유의 자유로운 풍경은 계속된다. 뭔가 분위기 있어 보이는 BAR가 있어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가롭게 여유를 즐겨본다. 첫 번째 두 번째 방문에선 즐기지 못했던 여유다. 다음엔 여길 가야 했고 그다음엔 또 다른 곳을 가야 했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겼는데 목적지가 사라지니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친 몸이 피로를 회복할 때까지 눈앞의 소호 풍경과 지나가는 사람과 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생에 목적이 없으면 이렇게 여유를 갖게 되는 걸까.. 이런 여유는 일장일단 양날의 검 명과 암이 있겠지..


어떤 여행지는 낮에 한 번 오고 밤에 한 번 와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낮과 밤에 보이는 모습이 많이 다르기 때문인데 소호가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밤이 되면 더욱 사람들로 붐비고 화려한 조명 아래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대략적인 설명은 위에서 했으니 사진을 보며 소호의 밤 분위기를 즐겨보다 (란콰이퐁 지역의 사진도 함께 섞여있음에 주의하자)



전체적인 분위기는 서울 이태원의 밤거리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배 터지게 무언가를 먹는다기 보다는 편안하게 밤 분위기를 즐기며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곳, 바로 홍콩의 소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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