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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May 02. 2016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연습

방콕 제일의 사원 왓 프라깨우를 가다

어떤 심리학자가 사람들에게 대학교 졸업생 12명의 사진을 무작위로 보여줬다. 동일한 횟수로 보여준 것은 아니고 각각 1회부터 25회 등 다양한 빈도로 사람들에게 노출했는데 그 결과 사진을 특정 졸업생의 사진을 반복해서 본 횟수와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는 정비례관계로 나타났다. 이는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자꾸 보고 접촉하다 보면 기계적으로 호감이 높아진다는 것으로 심리학 용어로는 '단순접촉효과'라고 한다. 


'단순접촉효과'는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의미 없는 단어만 나열하는 TV 광고라든가, 주변에 캠퍼스 커플 혹은 사내연애/결혼이 많은 것. 아니면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등 폐쇄된 공간 속 남녀가 서로에게 반하는 것 등. 


이것을 여행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여행지는 유럽이나 미국 아니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일 것이다. 직접 여행을 갔든 아니면 TV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었든 말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 국가와 문화에 친숙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태국여행을 준비하면서 난 뭔가 풀리지 않는 찜찜함을 계속 느껴야 했다. '정말 괜찮은 곳일까? 정말 좋은 곳일까? 가도 후회되지 않을까?' 여행을 좋아하지만 유럽이나 가까운 일본, 중국, 홍콩 정도만 갔을 뿐이다. 동남아시아권 국가나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여행 책자를 보아도, 블로그를 뒤져도 그 때 그 때 마주치는 이미지는 낯섦 그 자체였고 어딘가 맘에 와닿지 않았다. 특히 나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이미지는 방콕 사원이었다. 내게 익숙한 '외국'의 성이나 왕궁의 전형적인 모습은 전부 친숙한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건축물의 선이 위아래 혹은 양 옆으로 힘있게 쭉쭉 뻗은 모습들.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성의 모습

하지만 구글 이미지에서 본 방콕 사원의 모습은 정돈된 느낌을 좋아하는 나에게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고, 여행이 꽤나 달갑지 않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익숙한 곳을 가기만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방콕 여행을 그대로 밀어붙였고, 내 눈으로 직접 방콕 사원을 보고 나서야 마음 속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낯선 문화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며.



이른 아침부터 숙소를 나와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로 향했다. 현지 시각 기준 토요일에 찾아갔기 때문에 왠지 방문객들로 붐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왓 프라깨우 앞에는 엄청난 인파의 사람과 차량, 오토바이, 동남아 특유의 탈 것인 툭툭이 한데 뒤섞여있었다.


정신없는 풍경을 뒤로하고 일단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왕궁과 함께 있는 사원인만큼 경비가 다른 곳보다 삼엄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근엄하고 엄숙해야 할 경비원들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 좌측사진) 물론, 다른 경비병의 경우 내가 생각한 정형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미소의 나라' 태국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몇 일 전 테러리스트의 입국 소식에 방콕 현지의 주요 쇼핑몰이나 관광명소에서는 가방검사나 검색대 통과가 필수였다. 방콕의 왓 프라깨우 사원 역시 주요 관광지였고 특히나 왕궁과 함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 철저한 가방검사가 이루어졌다. 



사원이 많기로 이름난 방콕에서도 가장 유명하며 처음 방콕을 찾는 이가 꼭 방문해야하는 사원으로 꼽히는 왓 프라깨우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사원 내부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있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여유롭게 사원을 구경하고 싶다면 평일 오전을 추천한다.


매표소 역시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데 복장에 대해 가이드를 제시하는 간판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유럽에서도 몇몇 성당은 복장규정이 따로 있는데 이 곳 역시 짧은 바지나 치마 속은 민소매 티셔츠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이 규정을 어긴 이는 티켓을 구매했어도 안으로 입장이 불가하며, 따로 옷을 챙겨오지 않은 경우 현지에서 빌려주는 보자기나 치마 같은 것을 둘러야 한다. 불편하지만 그들의 방식이며 종교 시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니 불평 말고 따르기로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이트를 통과하고 나면 배가 한 껏 나온 모습의 동상이 나를 맞이한다. 종교시설 안에 있는 동상들은 근엄하고 엄숙해야할 것 같은데 세상 편한 자세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에 적지 않은 신선함을 느꼈다. 


그 옆에는 모든 종교시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초/향을 피우는 곳이 있다. 자신을 희생해서 주위를 밝히는 건 만국 공통의미인 것 같다. 이 둘을 보고 나서야 비로서 내가 방콕의 사원에서 예상(기대라는 말과 예상이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난 방콕 사원을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예상하기만 했을 뿐)했던 그 장면이 나왔다. 


거대한 지붕과 솟구치는 첨탑, 그리고 베베 꼬인 채 하늘을 향하는 장식품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풍경 그 자체였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때 느껴지는 감정이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멋지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들어차기 전에 내 생각과 감정은 온통 '이상하다' '낯설다' '묘하다' 뿐이었다. 



왼쪽을 돌아보니 비로소 내가 방콕 사원에 와있구나를 실감했다. 눈 앞에는 풍경은 방콕 여행사진이나 엽서 등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금색의 높은 첨탑은 프라 씨 라따나 쩨디이다. 전형적인 스리랑카 양식으로 라마 4세 때 만들어졌으며 탑의 내부에는 부처님의 가슴뼈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저 금색의 탑으로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단순히 외벽을 금색으로 칠한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황금탑에 작은 타일을 일일이 붙인 모습이었다.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순간이다. 우리나라의 절은 굉장히 소박한 편인데 방콕의 사원들은 굉장히 화려하다. 문화의 이에서 기인한 표현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하늘 높이 솟은 뾰족한 탑은 열반을 상징하는 것일까. 유럽의 성당도 이곳의 사원도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되는 높은 건축물은 성스러움과 웅장함, 하늘을 향하는 사람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프라 씨 라따나 쩨디 뒤로는 굉장히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왕실의 도서관 프라몬돕이다. 신성한 불교 서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내부는 진주로 장식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내는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겉모습만 봐도 충분한 것이 할 말을 잃을 정도의 엄청난 디테일이 건물 여기저기 숨쉬고 있다. 


프라 씨 라따나와 마찬가지로 멀리서 보면 그저 금색 기둥일 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프라 씨 라따나 이상으로 엄청난 세세한 장식으로 이루어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금색으로 치장한 것이 아니라 금색 장신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작은 불상도 연속해서 수십개가 나란히 붙어 있으며 반짝이는 보석과 예쁜 꽃모양의 타일이 정성스레 붙어 있다. 사람 손으로 이걸 일일이 만들 수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놀랍다. 


입구에 있는 발톱 역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조금만 방심해도 위로 확 올라와 나를 할퀼 것 같은 생동감을 전해주며 정면에서 보면 훨씬 더 정교하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알 수 없는 괴수의 입 속 혓바닥까지 표현되어 있다. 사원에 있는 모든 조각들이 전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다. 



불현듯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할말을 잃고 말았다. 평생 이렇게 화려하고 디테일 넘치는 건축물은 처음봤다. 사진 위부터 훑어보면 지붕의 외형도 그냥 심심한 직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구불구불 꺾인 모양이며 그 지붕을 떠받드는 기둥도 그냥 붙어있지 않고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부분에 꽃모양과도 같은 장식이 되어 있다. 기둥도 그냥 네모진 게 아니라 모서리를 몇 번 꺾었고, 그마저도 기둥의 면에 뭐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장식을 가미했다. 


기둥을 장식한 타일의 경우 네모난 모양을 이어붙이는 것도 힘든데 자그마치 수십각형 모양의 타일을 모서리가 잘 맞아들어가도록 이어붙였다. 그리고 타일 오른편에 있는 황금장식. 덧대고 덧대고 덧대어 만든 장식인데 정말 숨이 막힐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다. 도서관의 측면을 보아도 말이 안나올정도의 화려한 장식이 엿보인다. 그 흔한 창틀이나 문틀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워낙 사원이 거대한 탓에 도서관에 잠시 뺏겼던 시선을 거두니 여러가지 볼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코끼리가 있는 제단과 겹겹이 쌓여져 올라간 두 가지 색상의 거대한 지붕은 하늘을 솟구치는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역시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는 쩨디를 밑에서 떠받들고 있는 가루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반인반조 전설의 캐릭터 낀나라까지. 나는 우리나라의 조각상에서 저런 꼬리의 선을 본적이 없다. 유럽에서도 저런 선은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이 아니라 저 장식성이다. 온 몸에 치렁치렁 화려한 조각들을 박고 있는데 하나하나 손으로 정말 섬세하고 세심하게 만든 티가 역력하다. 특히 모자부분은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



왓 프라깨우 사원의  또다른 볼거리는 입구부터 시작되는 회랑을 따라 수키로나 이어지는 벽화인데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대한 이야기를 태국식으로 각색한 '라마끼안'의 이야기를 표현했다고 한다. 내용을 알지 못해도 몇몇 장면의 경우 그 의미가 또렷하여 '아 이런 얘기를 하고 있구나' 정도로 유추할 수 있다. 


사원을 가득채우는 화려한 건축물과 조각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긴 벽화를 그린 것 역시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같은 동양권 사람인 나보다는 서양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원의 뒷편으로 나오니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이렇게나 유명하고 거대한 사원이지만 어디까지나 여행객에게만 관광지일뿐 일반 사람들에겐 일상의 장소일 뿐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기도장소를 지나면 비로소 왓 프라깨우의 하이라이트 에메랄드 불상을 간직한 건물이 나온다. 멀리서 보아도 그 거대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방콕 사원의 건축물이나 조형물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계속 바라보노라면 무언가 위로 상승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상하리만치 높다란 지붕이나 지붕 끝에 달린 상승하는 모양새의 장식물 등. 하늘을 향하는 의지가 강렬하다. 


그렇게나 어색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사원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엄청나다 대단하다 화려하다' 로 생각이 바뀌었다. 맨 처음 느꼈던 그 감정들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것들이었지만 단 한 번 보고도 이렇게 강렬한 감정에 휩쌓인 것은 단순히 단순접촉효과로만 설명할 수 없었다. 



사원의 하이라이트, 에메랄드 불상을 보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비단 이곳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원 건물은 신발을 벗고 올라서야 한다. 관리가 꽤나 잘 되어있으니 망설이지 말고 발을 딛자. 그런데 이곳, 사진을 잘 들여다보면 진짜 놀라운 것이 여태까지의 장식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이상 잘게 조각낼 수 없을정도로 작은 조각들이 한데 모여 커다란 무늬를 있으며 심지어는 발을 딛고 올라서는 계단마저도 알 수 없는 문양으로 가득하다.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진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 곳에 모셔진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며 높이가 66cm정도 된다. 비록 크기는 작으나 전체 형상을 옥으로 만들었으며 계절이 바뀔때마다 국왕이 옷을 손수 갈아입힌다고 한다. 


다른 사원과는 달리 이곳의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밖에서 열린 문을 통해 사원의 일부를 촬영할 수는 있다. 건물의 화려함이 불상에까지 이어져 있으며 불상뿐 아니라 이것을 감싸고 있는 주위 장식 역시 무언가 알수 없는 신비함을 표현하고 있다. 내부는 굉장히 엄숙하고 조용하다. 여행객도 많지만 실제로 기도하러 오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내부를 둘러싼 벽에는 사진으로 미처 표현이 안되는 장식들이 있다. 



왓 프라깨우 사원 옆에는 왕궁이 있다.1782년 톤부리 왕조가 몰락한 뒤 짜끄리 왕조가 시작되며 라마 1세가 수도를 이쪽으로 옮기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중앙 상단에 있는 건물이 짜끄리 마하 쁘라삿으로 유럽의 어느 정원에서나 볼 법한 건물인데 그 위에 태국 조미료를 얹은 모양새이다. 현재는 국가 행사 때에만 이용된다고 한다. 


왕궁 역시 사원과 마찬가지로 눈을 사방팔방 어디에 돌려도 굉장히 화려한 장식이 보인다. 드나드는 문조차 평범하지 않다. 누군가의 시선이 닿기 힘든 곳임에도 정성을 다해 있는 힘껏 꾸며놓았다. 보이지 않는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했든가..



오기 전까지, 방콕에 대한 태국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했던 것이 바로 이 왕궁과 사원의 모습이었다. 이미 언급했지만 뭔가 마음을 이상 복잡하게 만드는 요상한 모양새가 뭔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환희와 감동과 감탄의 연속이었고, 오고 나서 방콕과 태국에 대한 이미지를 다른 방향으로 결정해버린 가장 중요한 곳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왕궁과 사원을 보고 나가는 길에 선입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으며, 아울러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새삼 알게 되었다.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가장 현명한 벙법은 머리와 마음 속 선입견을 비우고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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