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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29. 2019

그 도시의 첫인상

극적인 만남

극적인 순간이란?


'극적인 순간'을 영어로 번역하면 'dramatic moment'가 된다. 말 그대로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순간이라는 뜻인데 순간을 잘게 쪼개서 A와 B로 나누었을 때 A와 B가 물 흐르듯 흘러가면 극적인 순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A와 B가 마치 흑과 백 마냥 강렬하게 대조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극적인 순간이 완성된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다 한순간 환해지는 것처럼. 그렇다면 여행에 있어 극적인 순간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Scene 1

A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B 맛이 있다?(혹은 없다)


#Scene 2

A 한국에서 보기 힘든 친구를

B 다른 나라 한복판에서 마주쳤다?


#Scene 3

A 주머니 속에 고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갑이

B 한순간에 사라졌다?


모두 여행지에서 한 번 쯤 겪었을법한 극적인 순간이다. 만약 여행지에서 겪을 극적인 순간에도 순서가 있다면 아마 먼저 다가오고 가장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은 도시와의 첫 만남일 거다. 


대부분 공항을 통해 그 나라에 입국을 하고 공항철도 혹은 버스 등을 통해 그 도시에 도착한다. 그런데 대부분 공항에서 도시까지 가는 여정은  A TO B와 같이 장면이 휙휙 전환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처럼 물 흐르듯 연결된다. 


특히 지상 위를 달리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선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극적인 순간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지하철이라면 어떨까? 공항에서 도시까지 가는데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두컴컴한 터널뿐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플랫폼을 통과하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가기 전까지도 도시의 풍경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지상으로 나가는 순간 A에서 B로 장면이 바뀌듯 극적인 순간이 일어난다. 먼 고향땅을 떠나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내가 여행할 도시의 첫 모습은 어떨까 한국에서 수많은 책과 온라인에서 본 그 이미지 그대로일까?라는 온갖 물음은 이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으로 답이 되어 돌아온다. 



나에겐 포르투갈의 포르투가 그런 도시였다. 포르투를 여행하기 전까진 포르투갈이나 포르투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이 곳을 여행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포르투갈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몇 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포르투갈이 여행지로서 많이 각광받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선택은 옳은 걸까 가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기대보단 걱정이 더 앞섰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포르투까지 가는 직항은 없었다. 그래서 KLM 항공을 타고 일단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까지 갔다. 0시 55분에 떠나는 비행기라 여유롭게 출발할 수 있었지만 무척 졸리고 피곤한 상태였다. 


장장 11시간의 비행을 끝에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장거리 비행은 언제나 피곤하지만 이번 비행은 중국 상공을 지나면서 꾸준히 흔들려서 온 몸과 정신에 피로감을 더했다. 게다가 따로 핸드폰이나 아이패드 등에 영화를 담지 않았는데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마저 고장이나 11시간 동안 별달리 할 것 없이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는 게 참으로 고역이었다. 



그리고 스키폴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환승 대기를 한 뒤 다시 3시간을 날아 포르투 공항에 도착했다. 집 떠난 지 장장 15시간 만에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 셈. 


포르투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까지 가는 방법으로 지하철을 택했다. 숙소를 상 벤투 역 근처로 잡아놨는데 비용 측면이나 시간을 고려했을 때가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공항에서는 지하철이 일단 지상에서 달리기를 시작하고, 시내와 가까워지기 시작할 무렵 지하로 들어간다. 극적인 순간의 시작이다. 내가 탄 지하철은 상 벤투 역에 멈췄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무거운 몸과 캐리어를 끌고 저벅저벅 지하철 통로를 걸은 뒤 상 벤투 역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딱히 에스컬레이터는 없어서 무거운 캐리어를 손에 들고 시선은 계단을 향하며 끙끙거리고 올라가고 있는데 지하철 역사 내 조명이 비추던 계단이 자연조명으로 바뀌는 순간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았는데 



이런 장면이 시선에 잡혔다. 드디어 포르투 상 벤투 역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이다. 따스한 햇살이 긴 비행의 피로를 풀어주고 파란 하늘이 마음까지 청명하게 밝혀주며 Sao Bento라는 푯말은 내가 오고자 한 곳을 제대로 왔다고 안심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역시나 유럽에 오긴 왔구나라는 익숙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매번 공항에서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이런 첫 만남의 순간이 찾아오곤 하는데 포르투를 마주한 이 첫 장면은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너무나도 인상 깊었나 보다. 캐리어를 지상에 잠시 밀어놓고 상 벤투 역 앞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전형적인 포르투의 풍경과 마주한다.



극적인 순간에서 마주친 그 도시의 첫인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가 보다.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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