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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22. 2019

룸서비스의 미학

내가 룸서비스를 시킬 줄이야

룸서비스는 사치?


영화를 보면 종종 주인공이 룸서비스를 이용한다. 당장 생각나는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 4:고스트 프로토콜에서 적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룸서비스를 전달하는 직원으로 위장한 사이먼 페그의 모습이다. 코믹스러운 상황을 통해 자칫 긴장감에 짓눌릴 수 있는 장면을 가볍게 터치했다.



내가 생각하는 룸 서비스의 전형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늦은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객실에 들어와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푼다. 바쁜 일정 탓에 식사를 하지 못한 주인공은 호텔 안내책자를 슬쩍 보고 메뉴를 고른다. 이내 프런트에 전화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한 뒤 옷을 벗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다. 상쾌하게 룸으로 나오니 시간에 맞춰 호텔 직원이 정갈한 음식을 가져다준다. 주인공은 편하고 맛있게 식사를 한다. 


룸서비스는 호텔 객실 내에서 편하게 음료나 식사 등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여행을 다니면서 룸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용료가 밖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텔이 아니고서라도 밖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왜 호텔 음식을 먹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태국 방콕 여행을 갔을 때 룸서비스를 처음 이용해보았다. '인디고 호텔'이란 곳에 머물렀는데 룸서비스 비용이 너무나 저렴해서 '어디 한 번 나도?'라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콕 호텔들이 대부분 시설 좋고 여러 서비스가 저렴하기로 소문이 난 터라 밑져도 본전이란 생각도 있었다.


하루 종일 격하게?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고 늦은 밤에 객실로 돌아와서 저렴한 가격에 혹해 반신반의하며 주문했던 룸서비스 메뉴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호텔 음식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어 그저 객실에서 편하게 먹는 것에 의의를 둬야지'라고 생각하며 스파게티 면을 포크에 둘둘 말아 입에 넣는 순간



이거 뭐야


내 인생 까르보나라를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날 줄이야. 진짜 맛있었다. 늦은 밤 허기진 상태라 그런 것도 아니고 호텔 음식이라는 허세요 입맛도 아니었고 그냥 음식 자체가 맛있었다. 태어나서 먹어본 까르보나라 중 제일 맛있을 정도로.  


호텔 음식에 대한 편견을 다 깨부숴버린 탓에 나는 그다음 날엔 까르보나라 외 햄버거도 주문해보았다. 까르보나라는 특히 전 날 먹은 게 너무 맛있어서 '이거 우연 아냐'라는 생각에 검증을 위해 한 번 더 주문했다.



진수성찬 급으로 나왔던 룸서비스. 맛도 훌륭했고 보기에도 예뻤다. 이 정도면 한 두 끼 정도는 밖에서 먹지 않고 객실에서 편하게 즐겨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룸서비스를 이용하는구나 생각했다. 피곤할 때 편하게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한 끼.


물론 난 호텔 룸서비스를 이용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크게 만족하고 감동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 이후로도 룸서비스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으니까. 



방콕에 갔을 때 머물렀던 호텔 인디고는 저렴한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 이용하기 편한 기타 부대시설과 야경 등도 기억에 남지만 이상하게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건 저 룸서비스였다. 이 룸서비스 덕분에라도 나중에 방콕을 간다면 이 호텔에 또다시 머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항공사를 선택할 때 기내식을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호텔을 선택할 때도 룸서비스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차별점을 둘 수 있다면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있구나호텔이 룸서비스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구나를 깨닫게 해 준 룸서비스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룸서비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덕분에. 비슷한 상황에서 주저 없이 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재작년 겨울 제주도에 갔을 때 애매한 비행기 시간 때문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늦은 오후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이 시내와는 동떨어진 곳에 있어서 딱히 밖으로 나가 먹을만한 식당이 없어서 이번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냥 허기진 배나 편하게 채우자는 생각으로 룸서비스 메뉴를 보다가 김치찌개 정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웬걸, 이것도 역시 여느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보다 훨씬 맛있었던 것. 이쯤 되니 도대체 룸서비스라는 게 뭔가 기내식도 아니도 특정 공간에서 먹으면 훨씬 더 맛있어지는 마법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룸서비스보다는 밖에서 먹는 게 더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룸서비스는 언제나 그렇듯 비상상황에서만 이용하는 거라고. 근데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성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words&photo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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