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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30. 2023

사라진 저녁, 생겨난 아침

권정민 그림책 《사라진 저녁》을 읽고

도란도란 수다 떠는 재미에 밥이 더 맛있다. 커피도 디저트도 대화 없이는 밍밍하다. 언젠가 한동안 우리 사이에 수다가 사라졌다.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홀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저녁이 사라졌다. 단절이 불러온 상실은 생각보다 컸다. 누군가는 그 상실감을 '코로나 블루'라 부르기도 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도 나타났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탓에 한참 말을 배울 시기의 아이들은 입모양을 보지 못했다. 언어 습득이 늦어지는 아이에 애타는 부모가 생겼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학교에 자유롭게 등교할 수 없었다. 코로나 시기를 겪은 아이들은 집안에서 원격 수업을 들어야 했고, 단체 생활의 부재는 지금에 와서 여러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눈에 핏대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덕에 오래전 공상과학에서 만났던 미래 사회를 좀 더 일찍 경험하긴 했다. 재택근무, 원격수업, 외출을 대신해 주는 갖가지 배달 시스템들. 대면하지 않기 위한 갖가지 기술이 우리를 지배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작가는 파티 준비에 열중하느라 정작 돼지를 신경 쓰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물벼락을 날린다. 돼지는 난리 속에 사람들의 관심을 떠나 유유히 사라진다. 코로나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을까.


길고 긴 터널 같았던 단절과 구속이 끝났다. 그리고 2023년 한 해도 저물어 간다. 우린 서로를 믿지 못했고 누가 전염병을 퍼트렸는지 캐묻기 바빴다. 지구가 멈출 정도로 거대했던 일을 나는 너무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게 아닐까.


2024년, 새해가 다가온다. 우리에게 새로운 아침이 생겼다. 다시 거대한 저녁이 오더라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길 나에게, 당신에게 기대해 본다.

딩동. 아침이 왔다. 이번엔 닭이다. 우린 이 요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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