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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30. 2023

상처의 역설

쉽게 상처받는 마음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 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리고, 쉽게 상처 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김연수, <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지지 않는다는 말》, 마음의숲, 2018.


어느 새벽, 교수님의 카페 '일상의 글쓰기'에 들러 만난 글이다. 상처는 건강의 증거라는 작가의 통찰에 머리가 멍해졌다. 맞다. 나 또한 '육아를 했더니 마음이 자랐다'에서 '상처는 네가 용감하다는 증거'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 글귀가 나를 울렸다. 아직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상처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상처바늘'이란 글에서 '불편한 솔직함'이라고 얘기했듯이...

10년 전에도 지금도 내게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불편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나 혼자 잘나서 살았다고 센 척하려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통에 예민한 나이기에 상처를 글로 쓰고 있다. 나는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은 약한 마음의 소유자다. 상처가 나를 강하게 한 게 아니라, 나는 원래 약한 사람이었던 거다. 강하고 약한 것에 우월함이 있는 게 아닌데, 나는 약한 스스로에게 강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던 거다.

얼마 전부터 '내 친구 시어머니'라는 글이 메인에 올랐다. 라이킷 수가 70을 넘었다. 누가 보면 대단한 효부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전혀 아니다. 나 또한 보통의 며느리기에 가끔 시어머니가 대단히 불편하다. 이 불편한 솔직함을 주제로 글을 쓰기까지는 얼마가 걸릴까. 부끄럽다. 상처를 주제로 여러 글을 썼으면서도 배워야 할 인생이 수만가지다. 사람들의 칭찬에 그걸 잊어버렸던 것 같다.

부끄러운 마음을 고백하고 나니 후련하다. 약하고 여린 마음을 쉽게 상처받고 금방 지치는 나를 앞으로도 더 써 내려가 보겠다.


센척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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