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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Aug 11. 2019

반짝이는 한강, 그 밤을 걷다

190727-28 한강나이트워크

일상이 심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 '뭐 재밌는거 없을까?'하고 찾고 있던 와중에, 친구가 같이 가자고 보낸 URL, 바로 '2019 한강 나이트워크' 참가 신청 사이트였다. 체력의 한계 및 일부 코스의 신청 마감으로 인해 자정부터 시작하여 4시간 내에 완주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지는 15B 코스를 걷기로 하였고, 친구와 말을 마치자마자 등록을 완료하였다.

 

나이트워크 15키로 코스. 대학시절 많이 걷던 스팟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5키로...어떻게 보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고 쉬워보이는데, 막상 걸어보니 그렇게까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당일 저녁까지만해도 '15키로? 대학 때 그 정도는 거뜬히 걸었어! 당연히 할만하지!' 라고 생각했으나, 하필 날이 무척 습하고 더워서 밖에 조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어둠이 내리고 집결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데, 밤까지 이어지는 습기와 열기에 조금씩 위기의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거...심상치않은데...나 진짜 할 수 있을까...??'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 건, 결국 함께했던 친구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시작부터 흥겹게, 평소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업된 상태로 시작지점을 박차고 나갔다. 3km 남짓 지나 한강대교부터 동작대교 부근까지, 시야를 가리는 교각들이 사라지는 지점부터는 환상적인 한강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뷰가 보이기 시작했다. 5km쯤 갔을까?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발과 다리를 관통하는 아픔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으나, 함께하는 사람에게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아 애써 모른척 했다.


반포한강공원 부근에서 잠깐 멈추어 준비해 두었던 간식과 음료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 또한 모두 나이트워크 참여자들이었으므로, 말하지 않아도 모두 똑같이 힘듦을 공유하는 처지였다. 물론 힘들고 지치는 코스였지만, 함께하는 친구 그리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동일한 목적을 가진 같은 상황의 사람들 가운데 있다보니 뭔가 모를 에너지가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수교를 지나 턴하면서 CP뱃지를 받았다. 최근 뭔가를 끈기있게 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낸 적이 없다는 데서 스스로에 대한 조금의 아쉬움과 실망감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뱃지를 받으니 완주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곧 서울을 엄습할 빗줄기에 대한 예고였다.


쉬엄쉬엄 천천히 걸으며 한강의 밤을 좀 더 즐기고 싶었으나, 비가 오면 완주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약간 무리해서 빠른 페이스로 걷기 시작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가방에 들어있는 짐들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었고(몸에 편하게 감기는 값비싼 등산가방이었음에도!) 발과 다리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한강 북단코스 마지막쯤에 이르렀을 때는 이게 내 다리인가...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걸어내지르기만 했던 것 같다.


마지막 2km는 다시 원효대교를 거쳐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진입하는 코스였다. 이쯤되자 대교를 오르기 위한 계단쯤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 이 다리만 지나면 완주야!! 야호!!


급기야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깐 우산을 펴들었지만, 다른 참여자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이내 접고 그냥 그 비를 맞기로 했다. 오히려 비를 온몸으로 맞아내자, 시원한 물방울이 주는 상쾌한 기분 탓에 더위를 떨칠 수 있었다. 코스를 마치고 한강공원으로 들어오니 빗줄기가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더 긴 코스를 걷는 사람들은 한창 걷는 중일텐데, 그분들은 깨나 고생을 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아무말 않고 풀썩 주저앉아 간식과 음료를 먹으며 잠깐 휴식을 취했다.


메달을 받으니 3시간 남짓의 걸음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어 엄청난 쾌감이 느껴졌다. 이맛에 마라톤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에 있을 다른 마라톤에도 같이 참여하자고 친구에게 말했다. 물론 제대로 준비해서, 날씨 좀 좋을때 말이다. 그 날은 정말 고생이었고...


그렇지만 최근의 그 어떤 경험보다 뿌듯하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눈앞에 닥친 다른 일들도 물흐르듯, 차근차근 걸어나가다보면 못할것이 없지 않을까? 걷기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래. 그 어떤 일이든 오늘처럼 묵묵히, 차근차근 해나가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첫차를 타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 무거웠으나 마음만은 가벼웠다. 또 시작될 한주, 한달,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삶을 더욱 기대하며 걸어나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큰 일(?)을 치르고 나니 육체는 고단하게 마련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바로 잠들어버렸다. 일요일엔 다른 약속도 잡지 않았고, 기존 일정들도 모두 캔슬하고 집에서 푹 쉬며 고생한 나를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먹고, 그저 편안히 쉬는 시간을 보냈다. 나 자신과 내 생각에 집중하고, 삶을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었기에, 소중하고 값진 기억으로 남을 주말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가을에는 좀 더 짧은 코스로, 선선한 가을바람을 즐기며 걷기의 즐거움을 느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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