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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Apr 01. 2023

아이의 눈은 정확했다

내가 봐도 닮았어..

첫째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얀 얼굴 오뚝한 코. 설마 나인가 그런데 파란 눈? 나라고 하기엔 너무 예쁘게 그렸다 싶더니 역시나 내가 아니었다. 같은 반 이탈리아 친구의 엄마.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의 눈으로 보아도 똑같았나 보다.

이모가 책을 읽어주어서 고마웠고 또 정말 예뻐서 그리고 싶었다는 말을 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열심히 그렸는데 집에만 두긴 아까워서 그 엄마에게 따로 연락을 하고 아침에 전해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전해줘도 될까 고민을 했는데 6살 여자아이가 예뻐서 그렸다는데 싫어할까 싶었다. 덕분에 나도 영어 한마디 더 해보고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첫째 아이에게 나는 언제 그려주냐며 닦달 아닌 닦달을 했다. 나도 저렇게 예쁘게 그려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첫째는 조금 귀찮아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얼굴을 보며 열심히 그렸다.

그런데 결과물은 어제의 그 그림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찢어진 눈, 커다란 콧구멍, 대충 묶은 머리.

사실 아주 조금 기분이 나빴다. 어른답지 않다 하겠지만 너무 못생겨서 잠시 당황했다. 원래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칭찬하기 바쁘던 나인데 이날은 차마 바로 칭찬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래도 엄만데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쁜 거 아니었나!


텔레비전 보면 애들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며 안아주고 그러던데... 생각해 보니 우리 애들이 나한테 그런 말 한 적이 없긴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르게 그리다니! 그런데 계속 보니 정말 웃겼다. 이 그림 덕분에 남편이랑도 실컷 웃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솔직히 잘 그렸다. 나의 특징을 잘 표현한 거 같다. 엄마가 특별히 예뻐 보이는 필터 같은 건 없는 게 분명하다.


오늘 둘째에게도 이런 필터는 없다는 걸 알았다. 대뜸 내 눈썹이 이상하다는 둘째에게 그래도 예쁘다고 해달라고 말했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 눈썹이 예뻐" 그리고는 엄마가 예뻐 아빠가 예뻐라는 내 질문에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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