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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리 Apr 23. 2023

아들을 사로잡는 아빠의 능력

나는 못해. 안 해!

드디어 남편이 혼자서도 아이 둘의 육아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잘하는 게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은 결과인 거 같아 스스로에게 뿌듯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 껌딱지인 둘째를 두고 어디를 가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이제는 아빠랑 둘이도 있을 수 있다. 그냥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잘 있다. 즐겁게.


둘째를 사로잡은 남편의 능력은 만들기다. 특히 로봇 조립하기. 설명서만 있으면 뭐든지 뚝딱 잘 만들어내는 능력자라 둘째의 로봇들도 금방 만들어냈다. 38개월 둘째는 지금 모든 남자아이들이 한 번쯤 거쳐간다는 또봇과 헬로카봇의 단계에 흠뻑 빠져있다. 덕분에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선물을 받을 수 있을 때 로봇을 고르는데 점점 멋있어지는 만큼 만들기도 복잡하다.


나는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손으로 하는 거 잘 못한다. 처음에 아이가 로봇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땐 대충 만들기 쉬운 걸로 사줬기 때문에 설명서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점점 아이가 만화에 나오는 로봇을 장난감으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 좋아하는 로봇들을 사주기 시작했고 점점 복잡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로봇을 비롯한 장난감 만들기는 남편의 영역이 되었다. 나는 침범할 수 없고  침범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불가침의 영역이랄까?..


새로운 로봇이 우리 집에 등장하면 남편이 설명서를 보고 열심히 조립하고 아이에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물론 아직 어리다 보니 한 번에 알지 못하므로 계속 알려줘야 하지만 나는 모른다는 말을 할 뿐 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면 아이 스스로 생각해 보며 변신로봇을 자동차로 또는 자동차를 다시 로봇으로 만들거나 아빠가 오면 한껏 웃는 표정으로 달려간다. 남편은 "한 번만 알려준다 했지!"라든가 "이제 혼자 할 수 있겠지!" 같은 말을 구시렁거리며 또 열심히 알려준다. 만약 남편이 씻거나 다른 일로 바로 만들어주지 못하면 둘째는 곧바로 나에게 이른다. "엄마! 아빠가 로봇 안 만들어줘!!!!!"


첫째는 학교에 다니다 보니 학교친구를 주말에 만날 때가 많다. 엊그제 첫째의 친한 친구네로 놀러 가며 둘째는 아빠에게 부탁했다. 친구의 집 앞에서 나와 첫째는 먼저 내리고 남편은 둘째와 다른 곳으로 갔다. 행복해하며 손을 신나게 흔드는 둘째의 모습이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물론 아빠가 장난감을 사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 큰 것도 맞고 그 장난감이 남편이 사고 싶은걸 산거라는 아주 강한 의심이 들지만 아침부터 오후까지 밥 잘 먹고 즐거운 모습을 보니 아무튼 행복하다. 애들이 보기엔 아빠가 마법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좀 부럽지만 부러운 거로 남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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