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 이라는 말은 우리에겐 치욕적이었다. 구체성이 없는 말들... 우리는 이른바, 크리에이터(지금의 크리에이터와는 다른 의미)로 불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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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다리가, 그 다리 속이 다 봉합이 되어서 붕대를 푸는 상상을 한다. 몸속에 넣어 둔 철심을 뺐다는 농담을 한다. 아무튼 이제 다리에 근육이 붙어야 한다. 그래야 걸을 수 있다. 그래, 재활을 시작한다. 걷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정말 통쾌한 것은, 내가 걸을 수 없다는 것. 통쾌함은 물론, 다친 나를 걸을 수 있도록 해 준 보조기구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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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생각이 많다. - 밈처럼 단아한 이 문장은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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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기관은 정치적 욕구로 가득하다. 그들 속으로는 도무지 AI가 들어갈 틈이 없다. 지금껏 컴퓨팅의 역사처럼 권력욕은 AI를 인용할 뿐이다. 권력기관을 벗어나 지구로 나오면 AI는 흔하게 목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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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대신 생각한다.
대신 퇴고한다.
대신 살아간다.
대신 죽진 못한다.
인간은 없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아닌 정치적 욕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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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내 아쉬워 자판을 더 두드린다. 사람의 깊이 때문에.
두꺼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깊이가 생기지는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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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직업으로 52년을 살았다. 나는 늘 말했고, 자라서는 글을 썼으며, 직업으로는 광고회사를 다녔다. '생각'으로 살아온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 AI를 버리기로 했다. 도무지 이건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