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나 듣기가 거북한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쉰을 넘어가면서 죽음이 분명해진다.
죽는다는 걸 그저 결별로만 알았었다.
결별과 망각, 소멸, 어둠, 그리움조차 없는 세계로만 알았던 죽음이
어떤 '실체'로 다가온다. -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아가면서도 항시 기억하기 위해서,
지금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나에게서 쉽게 잊히지 않도록
새벽에 일어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어제부턴 영양제도 먹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때로는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듣고 (지금처럼)
쾌활한 사람이 되어
마을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을, 내가 나를 기억하듯 유심히
바라보고
4호선 전철을 갈아탄다. 갈아탄 전철에서 온몸을 축소시켜
60분을 견딘다.
출근엔 퇴근용 책이 무겁다.
매달 지불하는 배본비용이 생각난다.
출판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 본다.
배본사 창고에 쌓인 책들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말고, 죽음의 실체 - 나는 책을 만들면서 얼마나 즐거웠던가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헛웃으며
내가 나를 기억하듯 나는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