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고 불러주세요

by 현진현

"돼지~!"

아내가 날 부르면,

"응."

하고 대답한다.

딸아이도 날 돼지라고 부른다. 돼지님! 같은 존칭은 없다. 그냥 돼지. 그렇게 불리는 게 얼마나 좋던지. 남들 있을 땐 그렇게 부르지 않으니까, 우리끼리 있는 게 좋다는 의미도 되지만 호칭 자체가 아주 마음에 든다.

'돼지' 만큼 좋아하는 호칭에는 또, '등신'이 있다. 답답이, 멍청이, 어휴~ 같은 호칭과 상통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욕설이다. 아주 가까운 친우들이나 여자들이 그렇게 불러줬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경우에 따라 ‘바보’라는 표현도 근사하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하거나, 앞에 앉거나 옆에 앉은 사람에게 툭 치듯이 ‘야! 이 바보’ 했을 때 뭔가 멋지다.


천재들만 수두룩한 이 세상에서 바보는, 질서 정연한 존재다. 정년을 맞아 은퇴하기 직전의 파출소 소장처럼 몸에 밴 룰에 의해서 움직이는, 쉽게 말해서 원초적 존재라고나 할까.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는 1958년 <Lady In Satin>이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앨범의 첫 곡은, 유명한 <I'm a fool to want you>다. 노랫말의 디테일은 처음 이 노래를 불렀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썼다고 하는데 빌리 홀리데이가 불렀을 때 노랫말에 대한 공감이 더 커진다. 그녀가 불러야만 진폭이 커지는 <Strange Fruit>처럼 말이다.

"나는 바보입니다, 당신 없이 살 수 없는 나는 말이에요."

많은 것이 꼬여버린 세상에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 여자의 마음은 똑바른 직선이다. 더군다나 이 직선에는 굵직한 화살표가 하나만 있다. 일방적이다. 그래서 바보겠지만… ‘마음’, 특히 '사랑하는 마음은 쉽게 제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사랑하지 않는 마음'도 제어가 힘들다. 그러니 모든 일이,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아서 빚어진 걸까. 어차피 꼬일 대로 꼬였으니까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보자고.

"어이! 거기 김 차장, 사랑해요!"이러지는 말고. 쇠고랑을 찰 수도 있으니까. <Lady In Satin>은 빌리 홀리데이의 두 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었다. 그녀는 앨범이 나오고 1년 정도를 더 살다가 마흔넷에 죽었다고 한다. '이상한 과일'로 길지 않은 생을 살았다. 일생을 사랑했을지 모를, 그래서 늘 외로웠을 것만 같은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는 동시대를 살았던 거의 모든 인간들에게 바치는 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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