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나누면 커진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물리적으로 계산하지 않으면 그렇다.
'富'를 나누면 여러 사람이 '순간적으로 행복해진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포스터의 이 카피는 영화 '기생충'과도 동떨어져 있고, 영화를 비평한 대부분의 감상기와도 관련짓기 힘들다. 개봉 전에 봤던 포스터의 이 카피, 영화와의 관계가 어떻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1. 짧으면 임팩트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모두가 짧아질 때 길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봉준호의 영화라면 길어도 좋았을 것만 같다.
2. 그림(포스터의 합성한 사진)이 강렬했으니 카피가 없었어도 좋았다.
3. 과연 몇 사람이나 행복-여기서는 '부'를 말하겠지-을 나누려고 들까? 그러고 보니 그래서 발생한 이야기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행복은 나눌수록'은 일종의 가정이다. 'As if~' 같은 거란 말이다. '행복을 나눈다고 가정하자, 그럼 그 행복이 커지겠지?' 하는 식이다. 역시 가정이 틀렸다. 간혹 누군가 행복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볼 수는 있겠지만, 행복이 그런 거는 아니지 않나?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믿을 뿐.
어떻게 보면, 카피의 저층에 '행복이란 행복한 거다'는 선동을 깔고 있다. 이렇게 되묻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꼭 행복해야 돼? 왜?"
사실 되묻는 사람은 바로 나다.-난 뭔가 행복하지도, 행복하지 않지도 않은 상태가 좋다.
4. 사실 행복하자면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해야만 한다. 그런 까닭에......
불행히도 '부'는 나눌수록 그대로다. 다이어트의 요요처럼 쫄아서 본래대로 가버리고 만다.
저 카피의 화자-영화 속 캐릭터죠?-를 찾아서 사회철학적 계급의식을 질타할 멍청한 생각은 없다. 다만... '행복'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행복하세요'라는 덕담, '행복해야만 해'라는 당부, '행복한가?'라는 강박, 수없이 사용하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 속에 대비되는 타인의 불행,
"혹여 우리는 '행복' 때문에 불행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