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더 가까이

by 현진현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는 분들은 이 카피를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발 더 가까이"


흥건하게 엎질러진 습한 바닥을 보세요. 그게 또 밟기 싫어 한발 더 뒤로 물러서는 우리들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청소 후 첫 번째 사용자야말로 -일찍 출근하는 사람쯤 되겠군요- 한발 더 가까이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럼 두 번째 사용자도 충분하게 한발 더 가까이에 순응하고... 흔히 선순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선순환을 위해서 우리는 '타게팅'을 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사용자는 꼭!

한발 더 가까이

-당신이 깨끗하게 사용하면 쭉 깨끗할 거니까


뭐 살짝 농담 삼아 한 이야기니까 고리타분하다고 쏘아붙이지는 맙시다.

하여튼 '한발 더 가까이'는 참 좋은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볼일을 볼 때도 좋지만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대상에 한발 정도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서 별로 손해 볼 일은 또 없는 거니까요.

시집을 읽고 해설까지 읽고서 다시 시를 읽는다거나,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영화에 관한 대화를 한다거나, 비즈니스를 할 때 오피셜한 대화에 더 추가해서 눈높이에 맞는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아들 녀석과 대화를 할 때에 꼭 할 말이 아니더라도 아들 녀석의 관심사까지 얘기해 본다거나, 슬프거나 괴로울라치면 슬픔과 괴로움의 극단까지 부정적으로 가 본다거나, 아내를 기쁘게 해 줄 거면 아예 신상 명품백을 선물한다거나... - 과연 이게 '한발 더 가까이' 인지는 또 모르겠네요.


좀 다르게 보면 중요한 건, '한발 더 가까이'와 '한발 더 물러서서'를 경우에 따라 잘 취사선택하는 것이죠.

말을 기가 차게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의 말싸움에서 이기겠다면, 그 사람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이해하면서 듣는 미덕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엠마뉴엘 칸트를 비판하고 싶다면, '순수 이성 비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완독 할 필요가 없어요. 칸트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목차 정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궤변을 또 얘기해봅니다.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접근할 때에는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이, 최소 방법론적으로 필요합니다.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때 낭패를 보는 것도 꽤 있어요. 한 발을 너무 깊게 내딛는 바람에 변기에 옷이 닿는다거나, 칸트의 한 구절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독일 관념론의 역사까지 뒤지다가 결국은 칸트를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난다거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약을 공부하다가 너무 깊게 알게 되는 바람에 약을 맹신하게 된다거나, '불경기의 직장'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한 나머지 '넵넵병'에 걸린다든가, 좋은 영화 좋은 책이라고 해서 반복해 읽다가 자신의 감각과 지식을 상실하게 된다거나...

물론, 한발'만' 더 가까이라는 의미에서 문제는 없겠습니다.


"때론 한발 더 가까이, 때론 한발 더 멀찍이"


keyword
이전 01화글의 색깔이 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