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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l 26. 2020

당신은 나를 따라다니는 큰 그늘입니다

거의 매일을 걷는다. 특히 오후 해 질 녘엔 아내와 천변을 걷는다. '쉬었다 갈까요?' 종종 서로 묻긴 하는데 도중에 의자가 나와도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그늘이 나오면 쉬어간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학의천변에는 마음에 드는 나무가 서너 그루 있다. 대체로 도시에서 보기 쉽지 않은 큰 나무들이고 무성한 가지 아래 그늘을 두고 있다. 우리는 그 그늘에 들어가서는 1분 정도 머무르다 나온다. 나와서는 그늘의 기운을 가지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그늘이 나오면 쉬어가는 법을 나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당신은 그저 쉬어가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작지만 당신의 등은 큰 나무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다. 흙놀이를 했던 우리 세계에 플라스틱 장난감의 세계가 폭풍처럼 몰아닥치고 있었고, 나는 플라스틱 총을 몇 날 며칠을 졸랐다. 그 시절 아버지는 주말에는 늘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시고 코를 골며 주무셨다. 그랬던 아버지가 일요일 아침 나를 데리고 대구 한가운데 교동 언저리 장난감 가게로 데려 가시는 거였다. 가게 주인 앞에 앉아서 플라스틱 총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아버지를 나는 뒤에 서서 지켜보았다. - 튼튼한가? 색깔은 예쁜가? 안전한가? 가게 주인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포장을 뜯지 않은 새 제품을 달라고 하시고선 받자마자 곧장 내 손에 쥐어주셨다. 

샤파 연필깎이를 사던 날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우리 형제는 일요일 아침 목욕을 마치고 중학교 앞을 지나왔는데 (우리 형제는 모두 초등학생) 아버지께서 성큼 문방구로 들어가셨다. 기차 모양의 하이 샤파, 이리저리 돌려보신 아버지는 역시 'New One'을 내 품에 안겨주셨다. 저녁에 칼로 깎아서 필통 속 가지런히 넣어가던 연필의 세계는 끝이었다. (칼로 깎는 연필의 맛은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입고 싶어 했던 RCY 단복을 구할 때도 그랬다. 아버지는 동성로 지하상가를 가로질러 유니폼 가게 여러 곳을 뒤져 단복을 구해주려고 하셨다. 마침 단복은 품절이었다. 다음날 RCY 담당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그 단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떨어져 살고 있어도 가끔 목덜미가 시원해지는 기억들을 툭 던져주시는 아버지. 어제 마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가까이 살고 있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그 집 초밥이 맛있대, 그거 아버지 좀 사다 드려. 형네 집 근처에 그 마트 체인이 있었다. 


십수 년 전, 가까이 지내던 한 선배의 부친상 부고를 받고 곧장 조문을 갔다. 그런데 뭐랄까, 나는 평소 그 선배의 부친의 존재를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대리일 때 선배는 국장이었으니 연배도 훌쩍 높았던 데다 선배가 늘 자식들 얘기만 입에 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늘 아버지처럼 행동했지 누군가의 자식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나를 배웅하러 나온 선배가 방언이 터지듯 부친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체로 가족과 떨어져 한량 같은 삶을 살았던 부친에 대한 원망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들인데요?" 

나는 놀라움을 누르면서 조용히 말했다. 

선배가 하늘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큰 그늘이 사라진 느낌이야." 

나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날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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