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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l 03. 2020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2000년 가을쯤에 D선배가 아이들 옷을 수입해서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거기 메인 페이지에 카피를 써서 선배의 개업을 축하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사실 이 카피는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어쨌건 패션몰치곤 패셔너블하지 않은 문구였고 특히 선배의 누나가 미국 아웃렛에서 구매한 다음 한국으로 보내오는 주로 GAP 같은 브랜드들에는 맞지 않는 카피였다. 가만 보면 도무지 철학적일 따름이었다. 


지금도 교생실습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난 교생실습을 조금 무서워했다. 1990년대 후반, 실습을 다녀온 선배들마다 '거친 아이들'에 대해 여러 번 얘기를 했다. 지금에 와서 부모가 돼 우리 집 아이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거친 아이도 있고 부드러운 아이도 있다. 

며칠 전에는, 코비드에 감염된 초등학생의 동선이 공개된 것을 봤다. 집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다시 집에서 학원으로 하는 식의 그 동선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이 짠하기 했고, 어른들의 도식화된 동선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회의로, 회의에서 회식으로 회식에서 집으로......

'어른이나 아이나 시원하고 따듯하게' 살아가는 것부터 요청되는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 대한 갖가지 방식의 폭력, 아이들을 억압하는 그릇된 교육문화... 어릴 때부터 죽어나는 아이들을 쉽게 목격한다. 요즘 들어 우리 집 아이들에게부터 미안한 것들이 하나씩 새겨지는데... 코로나부터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범죄적 사회, 와 닿지 않았던 것들이 다가와서는 마음을 툭툭 찔러댄다. - 이 글을 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이 와중에(새벽 6시다) 아들 녀석이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린다. 녀석은 요즘 대학을 가보겠다고 애를 쓴다. 

자식이든 조카든 애견이든 애묘든 같이 살아가고 서로 사랑하다 보면, 그들에게 남겨질 것들을 걱정하게 되는 걸까? 


D선배는 요즘 호주에 있는 형수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면서 지낸다. 

'선배의 여름은 따뜻하게, 선배의 겨울은 시원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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