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마스크는요?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 세상에 이게 기억이 난다. 어렴풋한 기억들이 시간을 먹어서 외려 더 분명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 아버지께서 냉장고를 사 오셨다. 아마 가정용 냉장고가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그때 안심의 큰 길가 우체국의 사택에 살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만 해도 그 큰길로부터 굴다리를 지나 저탄장으로 가는 윗길도 지나 과수원 사이 그 좁지도 넓지도 않은 길을 지나면 다다르는 집성촌의 한가운데 할머니 댁에서 살았었다. - 갑자기 창고 아래 과실 저장고에서 올라오는 사과 냄새가 난다. - 나는 서너 살 정도이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예뻤고 아버지는 록 허드슨처럼 머리칼을 모두 뒤로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국 뒷마당 한편의 사택에서 자다 깼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울고 계셨다. 마당을 내다보니 아버지께서 며칠 전 사온 그 냉장고를 리어카에 싣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 '큰 애가 -아버지를 모두 그렇게 불렀다- 냉장고를 사 온 모양인데 시댁에도 냉장고가 없는데 그래서야 되는가?' 하는 할머니 주변의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 - 그렇게 냉장고는 리어카에 실려 할머니 댁으로 갔다. 후에 할머니 댁에서 그 냉장고를 다시 만나면 갑자기 반가웠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는 꽤나 멋진 분이셨으니 그 냉장고를 아껴주셨으리라.
어머니의 그 시절 전부는 '살림'이고, 그 살림이란 것이 먹여서 자식을 건사하는 것이었겠지. 어머니는 냉장고 없이도 배탈 나지 않게 우리를 키우셨다. 그날 이후 냉장고는 없었지만 얼음을 사 오셔서는 잘게 부수어서 미숫가루를 시원하게 태워주셨던 기억도 난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서 살았는데 그 시절 가끔 어머니와 통화가 되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밥은?
누군들 어미라면 그렇지 않을까만 통화 때마다 통화 첫머리에 꼭 '밥'을 물어보셨다. 특히 '밥'이라는 한 글자에 경상도 억양이 강하게 들어가서는 마치 사이렌 소리처럼 들렸다. 2000년 가을인가, 2001년 봄에 당시 무명이던 배우 현빈을 모델로 햇반 CF를 만들었는데 어머니의 통화를 소재로 썼다. 그래서 카피를,
밥은 먹었니?
라고 썼는데 윗분들이 '밥은 먹고 해라'로 완성시켜서 방송에 내보냈다.
어제가 어머니 생신이었다. 어머니와 통화, 내가 먼저 말씀드렸다.
어머니, 마스크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