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 Hyun Sep 12. 2020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가 '오후 네 시'라는 자신의 장편에서 셰익스피어의 물음이라면서 인용했습니다. 


1

The Art of Conducting이라는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는데 오늘은 책장에서 찾을 수 없네요. 하기는, 비디오 플레이어도 없습니다. 그 영상물을 보면 지휘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좌우로 상하로 팔을 내 젖습니다. 땀을 낚아채듯 우아하게 속도를 높이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지휘자도 있죠. 또 표정과 제스처를 가지고 대화하는 지휘자도 볼 수 있어요. 비디오테이프의 표지를 보면 지휘자 한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흰빛을 끌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기형도 시인이라든가, 지미 헨드릭스라든가, 마이클 잭슨이라든가, 또 이름 모를 화가들이 떠오릅니다. 대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언뜻 봐서는 그들의 작품이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랍니다.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그들의 삶이었을 뿐입니다. 그 삶이 빛났던 순간들을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들여다보면 작품보다는 그들의 지휘가 빛나는데 말이죠. 


3

"포근하다." 

겨울이 그리 춥던 시절에도 나흘 만에 조금이라도 덜 추우면 '포근하다'라고 소리 내 말하곤 했다지요. 

그렇게 인간의 언어는 신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널드 하우저(Arnold Hauser)'의 오래된 책을 들먹일 것도 없이, 신에 대한 행위는 인간을 위한 행위였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저 인간이 바라던 바'였던 거죠. 


4

몇 년 전에 읽은 소설, '오후 네 시'는 이웃의 불쾌한 방문을 다룹니다. 매일 네 시만 되면 내 집을 찾아와 도통 무례하게 앉아있다 가는 독특한 무뢰한이 등장합니다. 소설의 말미에 이 방문자는 내 집으로 더 이상 방문하지 못합니다. 네, 죽었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유무가 달라지는 순간에 어떤 빛을 보게 되는 걸까요? 


5

소설 속 주인공은 끊임없이 (타의에 의해) 자기 번민의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나란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사실 이 대목은 섬뜩합니다. (물론 소설 속에 저 대목이 나오는 건 아닐 거예요.) 자세히 읽으면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 기제가 되는 질문이거든요. 주인공은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자신에 대해 질책하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게 됩니다. 스스로를 인형으로 만들고 사지에 실을 달아서는 이리저리 움직여대는 것과 같습니다. 

단언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셰익스피어가 비유한 '눈의 흰빛'은 인간의 자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