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도 좋아하고 이성도 좋아했다. 오후 네 시가 아닌 새벽 네 시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안네 소피-무터'도 좋아했고 '말러'도 좋아했고 '마일즈 데이비스'도 좋아했다. 한날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도 사다 날랐다. 그로부터 그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것은 무려 스무 해 뒤의 일이었다. 점점이지만 재미없는 것에 빠져간다.
슈베르트 보다 김어준을 듣고, 구스타프 말러를 듣기보다 했던 얘기를 다시 일삼는 투머치 토커가 되었다. '사회정의'를 명목으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핑계로 공권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들일 것이고, 제주에 거처를 만들어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일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비대면 시대에 빠져들어서는 죽어라 책을 읽고 죽어라 소설을 써 댈 것이다. 그러자면 끝내주는 체력이 필요하니 매일 자전거를 타는, 그런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가능성은 완료된 가능 위에 기생한다. 스스로를 위로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위로할 수 없다.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서 이런 것들을 깨닫는다. 쓰는 자를 위로하지 못하는 당연하게도 읽는 자를 위로하지 못한다.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에 만족한다. 스무 살에 읽었던 '로트레아몽'이나 '비용'처럼 이상할만치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말하는 것에 지쳐서 말로 말을 위로하는 놀랍게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나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에 꽂히고 만다. 어떤 남자가 교묘히 실종되었다. 나는 그만 그 사건에 미쳐서 그 사건을 소설로 서술한다. 등장인물이 재미있으려고 나는 또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어떻게 편집하더라도 300페이지를 넘는 장편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제는 한 공기관의 영상물을 심사하는 자리에 갔었다. 어떻게 하면 더 공정하게 점수를 매길까만 고민하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두 시간 사이에 일곱 개의 카톡 메시지와 세 통의 부재중 전화와 서너 개의 문자메시지를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거리에 서서, 안녕하세요를 읊조리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한때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꼰대라고 불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