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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l 06. 2020

이곳의 공기는 맛있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太宰治), '사양'에 나오는 대사, 

"맛있어! 이곳의 공기는 맛있어." 

이 대사를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공기를 맛보기 시작했다. 

평일 낮 가까운 청계산을 오른다. 그러고 보면 의왕 쪽 공기와 성남 쪽 공기가 다른 것도 같다. 정말이지 그렇게 걷다 보면 맛이 느껴지는 공기가 있다. 

딱히 씹어서 먹지 않는 맛이라고 한다면 음악의 맛, 말의 맛(말맛), 키보다를 치는 맛, 기타를 연주하는 맛, 노는 맛, 죽을 맛, 살 맛, 걷는 맛, 자는 맛, 숨 쉬는 맛,... 수없이 많을 텐데 소설에서 그 기품의 여귀족은 공기의 맛 정도가 아니라 '공기가 맛있어'라고 말하는 거지. 가령 '말맛이 있네'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말은 맛있어'하는 것과 같고 '살맛 나네'가 아니라 '사는 게 맛있어, 어제 참 맛있었어 그렇지?' 하는 것과 같다. 

그건 그렇고, 나열한 맛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유하는 맛과 경험하는 맛이다. - 당연히 '소유보다는 경험'인데 뭔가 쉽지는 않다. 소유하지 않고 경험하는 맛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경험하는 그... 공유의 맛을 알아가다 죽는 것이 좋겠다. 맛있어, 오늘 공기는 참 맛있어 - 이렇게 생각하는 시절에 다다라 죽는 것 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기억 한 가지를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기억이라는 무형의 것이라 하더라도 레코드나 기타나 키보드를 들고 가기엔 좀 거추장스럽지 않을까? 

실제, 아니 소설 속 귀부인은 맛있는 공기의 기억을 거의 마지막으로 가진 채 결핵으로 죽는다. 그런 맛있는 기억이라면 다행이다. 이 귀한 것을 모르고 지나치면 안 되겠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3월 즈음부터 '공기'는 걸러야 할 무엇이 되고 있다. 

영원 무결한 것은 역설적으로 '순간'이다. 순간은 백만 광년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 '공기'와도 같다. 이제 인간의 '고독'도 '절망'도 하찮은 것이 되어 간다. 


공기가 없는 곳에서의 우리는 대체 무슨 도리로 살아갈 것인가? 인간의 싸이클로 보자면, 지금의 세상은 지쳐서 엎드려 지내는 40대 중반 정도가 아닐까? 별다른 도리 없는 척 주변의 일상들을 누려왔지만 이제는 주변을 챙겨보고 싶어지는 그런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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