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극이 대부분 그렇듯, 다음의 대사도 슬프다. 길지만 음미해보자, 대유와 비유의 점철로 진한 눈물을 뽑아내는 브레히트의 좌빨 카피를.
"신사숙녀 여러분! 그대들은 계집이 언제 치마를 걷어올리고 또 언제 눈을 아래로 내려 까는지를 가르치지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고 죄와 악행을 피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우리에게 쳐 먹을 것을 주셔야지요. 그리고 나서야 이것으로 모든 것이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의 똥배와 우리들의 착함을 사랑하는 그대들! 우리의 수치심과 그대들의 욕정을 내세우는 자들이여! 이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아두시오! 그대들이 어떻게 둘러대고 농간을 치든 간에 우선은 배불리 쳐 먹고 나서야 도덕심이 생긴다오. 도대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느냐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인간을 괴롭히고, 껍질을 벗기고, 공격하고, 숨통을 눌러 죽이고 그리고 잡아먹으며 살지요. 인간은 자기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잊어버림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환상일랑 갖지를 마세요. 인간은 악행으로만 살아갑니다요."
이 '완곡한 역설'은 슬프지만 형언할 수 없이 통쾌한 면도 있다. 특히,
"인간은 악행으로만 살아갑니다요."
같은 대목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탄식을 불러온다. 사회적으로 규명을 해본들 어쩔 것인지 철학적으로 밝혀본들 어쩔 것인지.
"우선은 배불리 쳐 먹고 나서야 도덕심이 생긴다오."
부자든 빈자든, 집권층이든 백성이든, '쳐 먹을 것'에 대한 요구는 언제든 여전할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악행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저러나 도덕심 비슷한 것들이 일단은 똬리를 틀자면 배부른 상태를 지속시켜야 하는 것이다. 밥 먹고, 밥 먹고, 또 밥 먹고, 다시 밥을 먹고...
아, 인간이란 무리는 이토록 처절한가.
브레히트는 '가진 자'를 힐난하고 있지만, 이 '가진 자'들이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면 '없는 자'와 같다. - '가진 자'도 아니고 '없는 자'도 아닌 괴물이 탄생한다.
사실 관계 적시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종교와 병원을 싫어하지만 종교인들과 의료인들에 대해서는 선입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배불리 먹고도 배가 터질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의 목사와 의사들에 대해 분노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높은 상태의 분노는, 그들이 무리 속의 힘을 빌어 스스로의 도덕심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일부 목사와 의사들은 이 '비도덕'들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그러니
"하나의 인간이란, 이토록 처절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