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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n 17. 2020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좀 더 떠 있겠습니다 

자전거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자전거를 탄다. 일이 분만 타고 나가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자전거길이 뻗어 있기 때문이다. 학의천을 따라 천변을 오고 가는 이 길은 산책로이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나는 광명도 가고 가끔은 서울도 간다. 

이 길에서는 당연하게도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서너 명 이상이 줄지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타기에 문화나 규범 같은 게 있는지는 잘 모르는데 일단, 이들은 위험하다. 천변길은 벨로드롬이 아닌데도 이들은 날아가듯 자전거를 탄다. 이 길에서는 개도 다니고 노인도 다니고 아이들도 다니고 시각 장애인도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다니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세발자전거도 타고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정신없이 러닝 하기도 한다. 사이클 고수들은 오토바이 몰듯 이 모두를 아찔하게 추월한다. 나는 이런 재미로 자전거 타요, 하듯이. 개중에는 그래도 경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다.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하면서 그들은 바람을 몰아 대며 달려 나간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자전거 타는 이유인 것 같다. 

반면 나는 규정 속도인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보통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탄다. 그 한 시간 동안 안장에서 내려오지 않고 페달 밟기를 멈추지 않는다. 말하자면, 지상에 발을 디디지 않는 한 시간 - 이것이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다. 아마도 나는 그 한 시간을 나는 사랑하는 것 같다. 

평소, 왜 자전거만 타면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지 궁금해했는데 언젠가 충훈터널 근처의 자전거길에서 문득 깨닫고 말았다. 지상으로부터 격리된 시간이 평화를 주었던 것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앞으로 이 평화로운 시간을 조금씩 더 늘여보려고 한다. 


좀 더 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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