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지브리를 아주 좋아한다. 봤던 것을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 수년 전에 광화문에서 지브리 전시가 있었다. 티켓값이 좀 비쌌기 때문에 아이와 아이엄마만 전시를 보러 가고 나는 광화문 스타벅스 2층으로 올라가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커피를 마셨다. (그런 시스템을 스타벅스에서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때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스타벅스를 나서는 신사풍으로 차려입은 노인이 내게 말했다. "젊은이~ 사진 잘 찍으슈." 노인은 내가 휴대폰이 아닌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는 모습에 조금 전부터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노인에게 스마트폰은 불쾌한 사진기였을지도 모른다.
2006년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에 관한 컴피티션이 있었다. 우승을 한 나는 회사로부터 상금조로 프랑스여행을 특전으로 받았다. 칸느광고제를 참관하고 프랑스 남부를 여행한 다음 파리로 와서 또 관광을 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관광여행에 출장비까지 넉넉하게 받았다. 나는 니스로 가서 이탈리아로 걸어서 가보기도 하고 마티스의 흔적들을 좇아 남프랑스를 돌아다녔다. 그 여행을 기록한 카메라는 플래시까지 800그램쯤 되는 야시카 RF카메라와 후지필름 오토오토200이었다. 물론 그 카메라에 니콘의 디지털, 그리고 아마 파나소닉의 캠코더까지 있었던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 카메라가 아직도 작동하나요?"라는 질문이 많았다.
이 세상에서 같은 순간에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대체 몇 장이나 될까?
행위를 인문학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는 나는 행위의 본질에 집중하는 필름이 좋다.
디지털사진은 과학의 산물이지만 필름사진은 화학적 마법에 가깝다. (둘은 다른 영역이다.)
나의 조급증에는 찍고서 몇 주가 지나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필름이 치료제다. (필름은 찍는 순간이 품은 몇 가지에 대해 현상 전까지 생각할 시간을 준다.)
나는 필름을 쓰기(writing)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기에 매우 호의적이다. (나는 작가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작가의식을 지녔다.)
2006년 프랑스 여행 이후에서 최근 몇 주 전 다시 카메라를 꺼내기 전까지 나는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필름값이 오르고 오래된 필름사진기도 그 값이 오르고... 아무래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에 다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관심이라고? 사라져 가는 것들은 대체로 아름답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