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포레스트_무해하다

by 램램

제작사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 투자사 쪽과 미팅이 있어 PD님과 길을 나섰다.

강남 모처에서 이런저런 프로젝트 얘기를 하던 두 사람 옆에 앉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PD는 이런 일을 하는구나, 투자사는 저런 것들을 궁금해하는구나, 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얘기가 길어져 2차 맥주집까지 가게 됐는데 대단히 심각하지도, 대단히 흥겨운 술자리도 아니었다.

열 시쯤인가, 미팅이 파하고 나는 투자사 사람과 같은 방향 택시를 같이 타기로 했다.

논현역까지 몇 분 되지도 않는 그 사이,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같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누군가/전혀 모르는 타인이 /나에게 사전 양해나 맥락없이/내 손을/잡을 수 있는 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자신이 투자사 소속이라는 '갑'이기 때문에, '을 중에 을'인 제작사 막내의 손을 그냥 덥석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팅에서 그와 내가 직접적으로 대화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었고, 나는 그 사람의 소속과 이름, 하는 일만 대충 알았고, 그는 내 이름도 몰랐을 거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나는 사고가 정지되어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택시가 논현역 앞에 도착하자 도망치듯 내려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주먹을 한대 날렸어야 했나?'
'뭐 하는 거냐고 화냈어야 했나?'

'택시 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할걸 그랬나?'

'내가 만만해 보였나?'


처음엔 자책을 했지만 다시 생각을 고쳤다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그 작자가 쓰레기인 거야'



며칠 후, 영화 시사회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내가 기억나지도 않는다는 듯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 소름 끼쳤다. 그 후, 그냥 잊어버리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사람의 얼굴, 이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한다. 2년 전엔 한 회의자리에서 그 사람을 만났고, 1년 전엔 어떤 행사에서 그 사람을 마주쳤다. 지금의 나는 '을 중의 을'이 아니니까 그는 더 이상 내 손을 덥석 잡지 못할 텐데도, 나는 그 사람을 피했다.


그는 나를 기억도 못할 거다. 지금 내가 명함을 건네면 그제야 지금의 나로 기억하겠지.

앞으로도 언젠가 그와 다시금 마주치게 될 일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절대, 인사하지 않을 것이다.




'미투 운동'과 '김기덕 감독 사건' 이후, 영화계의 성희롱 성폭력에 대해 많은 기사들이 오르내렸다.

영화계는 유독 성희롱, 성폭력이 잦다는 생각, 영화계는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라는 편견, 일견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인들은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그중에서는 그러한 현실에 맞서서 '무해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장면과 장면, 아름답고 정성스러운 자연스러움에 마음이 치유되기도 했지만, '참 무해하고, 건강한 제작현장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현장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님은 임순례 감독님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센터장님이시기도 하고, 현장에 아래와 같은 수칙을 담은 콘티북을 배포하기도 하셨다.


촬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10가지 생활 수칙
①성희롱과 친밀감을 구분한다.
②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삼가며 회식 때 음주나 술시중을 강요하지 않는다.
③성차별적 농담, 음담패설을 삼간다.
④성희롱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은 분명히 표현한다.
⑤상대방의 싫다는 표현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⑥동료의 사생활에 관한 루머를 퍼뜨리지 않는다.
⑦동료의 신체에 대해 성적인 평가나 비유를 하지 않는다.
⑧공적인 업무이야기는 숙소 등 밀폐된 장소가 아닌 공적인 장소에서 한다.
⑨고정된 성역할과 나이를 강조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⑩주위에 피해자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10가지, 그리 복잡하고 대단치 않은 수칙일 수 있다. 하지만 저 수칙이 영화 제작의 지도나 마찬가지인 '콘티북'에 실리고, 그런 현장을 만들겠다고 감독이 선언하다면, 분명히 바뀐다. 을중의 을, 제작부 막내도 저런 보호막이 있다면, 곤란한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리틀포레스트2.jpg 좋은 현장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앞선 택시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어떤 분노 어린 사명감을 주었다. 그 이후에도 현장에서의 더러운 농담, 말도 안 되는 추파, 불쾌한 경험은 계속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용기를 내서 대응하곤 했다. 효과가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나는 내가 영화일을 하는 한, 어떤 횃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타는 분노와 용기로 세상에 불을 붙이고, 불이 널리 널리 번져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참 오만한 생각이었다. 어느날 문득 내가 그 불에 다 전소되어 재가 되어 남았다는 걸 깨닫고, 꽤나 긴 무기력한 시간을 버텼다. 불타버린 것은 내 열정이었다.


이제는 내가 가로등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이 자리에 서서, 영화인들의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가로등들이 길 위에 계속 이어져 또 다른 가로등이 또 다른 어둠을 비춰줄 거다.

만약 가능하다면, 더 큰 빛이 되어 등대가 되고, 방파제가 되어도 좋겠다. 언제까지나, 내 자리에서, 빛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현장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

좋다고 평가되는 영화가 모두 좋은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가끔 성격 나쁜 천재 감독이 스태프들을 괴롭게 하면서 '보기에 좋은'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현장이 나쁘면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아주 거대한 수공예품이다. 모든 과정과 모든 순간에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중요하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해야 한다. 스크린의 안과 밖, 앞과 뒤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가로등 같은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재가 되어버린 나의 분노와 열정은, 다시금 작은 가로등 불빛의 연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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