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함께 본 선배가, <힘내세요, 병헌씨>를 소재로 추천했다.
덕분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던 주말 동안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감독을 꿈꾸는 병헌씨의 이야기는 참으로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날 것의, 가감없는 영화계의 '쌩얼'이다.
'아니 설마 저정도겠어?' 라고 느꼈다면, 정말 그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내놓고 7년만에 그는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 감독으로 돌아온다! 두둥!
영화인의 운명. 참 알수 없는 것.
제작사 마케팅팀(겸 기획팀)에 있던 시절, 우리 회사에는 몇편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고,
매일매일 각 프로젝트의 기획회의와 시나리오 모니터링이 이어졌다.
여러명의 감독과 프로듀서, 작가가 오가는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대표님과 그 분들의 미팅에 '모니터링'을 핑계로 끼기도 하고,
커피를 타서 대령하기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그 시절, 그렇게 수없이 고쳐지던 시나리오들 중에 영화가 된 건 두 편 뿐.
그 두 편이 캐스팅, 투자를 거친 것도 기적같은 일이다.
그렇지만 어렵사리 제작을 하고 난 뒤 그 두 편의 영화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망했단 얘기다.
1년에 수백편의 영화가 개봉하고, 그 중 기억도 나지 않는 망한 영화들도 많지만,
망한 영화들 사이로 사라진 수많은 시나리오, 감독, 프로듀서들이 있다는 것도 종종 잊곤 한다.
병헌씨가 작업하던 '귀여운 남자'가 제작과 개봉에 성공했더라도,
아마 그 영화가 잘됐을 확률은 무척 낮았을 거다.
바늘구멍의 바늘구멍을 거쳐, 영화가 제작되고, 그 중에서도 관객이라는 가장 까다로운 선택을 받아야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는, 참 암담하고, 힘든 것이 영화 만드는 일.
그 시절을 생각하니, 관두길 정말 잘했구나 싶다.
실패는 참 쓰고, 실패를 삼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병헌씨의 인생역전을 만들 만한 배포는 없는 편이라는 걸 일찍이 깨달아서 다행이다 싶다.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은 하루에 몇시간도 채 되지 않는 병헌씨가
콜라를 넣고 찜닭을 만들어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집에 남은 콜라들을 가지고 찜닭을 해먹었다.
되게 맛있었다. 왠지 한약맛도 나고.
병헌씨는 시나리오가 잘 안써지는 답답한 와중에도 밥을 잘 챙겨먹는다.
성실하게 요리해서, 잘 챙겨먹는다.
그런 일상을 지키는게, 그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병헌씨의 성공비결이 아니었을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쉬는건 너무나 당연하고
병헌씨는 술을 너무 많이 먹는 편인데다, 전처의 집에 가는 건 정말 최악이지만
그의 생활에는 어떤 루틴이 있다.
루틴이라고 해서 모두 건강하고, 무해한 것은 아니나
어쨌든 그는 계속 그 루틴을 이어가고, 썩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 일상을 꾸준히 이어간다.
일상의 반복은 참 지루하다고 여겨질 때가 많은데,
그 일상을 지켜가는 것이 제일 어렵기도 하다.
요새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이들의 일상이 흔들렸기에 유독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병헌씨가 성공작의 감독이 된 건,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는 대신 단편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끓여먹던 찜닭의 일상은 그 마음의 하나의 기둥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콜라찜닭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아! 병헌씨와 닭의 인연은, <극한직업>까지 이어진 것이구나! )
소소한 루틴을 이어가고, 지키며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나에게, 모두에게 바래본다.
덧, 내가 참고한 콜라찜닭 레시피는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