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시 노형동에서 6살까지 살다가, 섬을 떠났고
육지에서의 삶이 30년을 넘어간다.
어렸을 때는 방학마다 제주도를 갔었지만, 철들고 나서부터는 주로 경조사가 있을 때에나 제주도엘 갔다.
그리고 2010년 겨울, 처음으로 '일하러' 제주도에 갔다
제작부 막내로 참여한 영화 <챔프>의 촬영이었다.
날씨도 궃고, 탈도 많았던 촬영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엄청난 폭설로 촬영이 어려워 덤같은 휴가를 얻은 날,
고모가 마침 서귀포 시댁으로 간다며 나를 픽업해 사돈댁으로 데려갔다.
낯선 친척들 사이에서 '사돈처녀'로 앉아 고기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게 참 어려웠다.
영화를 찍는다니, 그 힘든 걸, 굳이 제주도까지 와서 왜 찍지? 하는 표정들이셨다.
제주도 분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영화일'이란 진로를 택한 나를 신기해들 하셨다.
내가 떠난 후, 고모에게 물으셨다 한다
"아니 근데 사돈처녀는 왜 그리 힘든 일을 한다니?"
가끔 제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본다.
어려서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성격이었으니, 아마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다.
전문직이나, 공무원이 되고 싶었을 테고, 꾸준히 그 길을 가서 제주시 어딘가에서 일을 시작하고,
제주도에 더 깊이 뿌리내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더 자주 뵈었을 거고, 가끔 귤농사도 도와드리러 갔을 테고,
사촌언니 오빠들과도 자주 만나고, 당연한 제주사람이 되어있었겠지.
그 나름 평화롭고 즐거운 삶이었을 것 같다.
평행우주의 내가 그 삶을 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을 정도로.
어쨌든, 육지에서의 삶을 살게 된 섬사람인 나는, 줄곧 낯선 일들에 관심을 가져 왔다.
자꾸 다른 나라로 가고 싶었고, 새로운 일들과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일을 택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부산에도 자리 잡게 되었다.
제주도에 있었더라면 생각하지 못했던 항로로 이렇게 꺾고, 저렇게 꺾이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영화 <챔프>는 나에게 영광의 상처 같은 영화다.
호기롭게 뛰어든 영화 현장의 막내 중 막내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성장했고, 내가 하고 싶은 영화일이 뭔지, 왜 영화일을 하고 싶은지 계속 물었다.
그 대답으로 나는 여전히 다른 방식이지만, 나의 영화일을 하고 있다.
<챔프>의 극장 최종 스코어는 53만 명. 실패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영원에 가깝게 존재하기에 누군가는 여전히 그 영화를 보고, 의미있는 영화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래서 섣불리 마침표를 붙인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에 참여했던 이들도, 나도, 나름의 항로를 조정해나가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지금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와있는지, 내 안에 쌓인 게 무엇인지 잊고
쉽사리 나를 자책하고, 나를 미워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여기,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순간들과 선택들, 경험들과 사람들을 떠올려야 한다.
선택이 옳을지, 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 선택을 옳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뿐이지.
사돈처녀는 제 나름의 선택들을 후회하기도 하고, 옳게 만들기도 하며
평행우주에 있을 나에겐 낯선 모습으로 여전히 항해 중이다.
그렇게 항해를 즐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