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_그렇게 남은 사람

by 램램

아무리 날씨가 맑아도 밖에 나서기 망설여진다.

사람을 만나는 일, 어딘가로 떠나는 일이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시절이라니.

이 시간들도 언젠가는 추억으로만 남으면 좋겠다.


햇살이 꽉 찬 창을 암막 커튼으로 가리고, 영화를 보았다.

몇 년 전부터 봐야지 마음만 먹고

정작 맘먹고 보지 않았던 건,

짧은 시놉시스만 봐서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왜 이런 소재로 영화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다.

그의 세계 속에서, 작은 사건으로 이륙한 이야기는 묵직한 메시지로 착륙한다.


그의 데뷔작, <환상의 빛>도 그랬다.


자신의 탓으로 할머니가 실종되었다고 생각한 소녀는 자라서 오랜 친구와 결혼하고, 갑작스레 남편의 자살을 겪는다.

시간이 흘러 재혼을 하고,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문득 문득 남편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으로 남은 남편과의 기억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도 묘한 여운만 남아있었는데,

밤이 돼서야 와르르 터져버렸다.

떠나버린 사람들을 잊기 위해 노력하는 일.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과정에 대한 얘기였구나.

그 과정에 대한 영화였구나.



내가 그 선배에 대한 글을 써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행여나 그의 죽음을 이용하는 일이 될까 봐 온종일 그 고민으로 괴로웠는데.

생각만으로는 더 괴로워질 것 같아 글로 옮긴다.


선배가 사라지기 하루 전,

선배는 내게로 배달된 택배상자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충 고맙다는 말을 하고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 평범한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그 순간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곱씹어서다.

너무 후회해서다.


다음 날 선배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차디찬 바닷가에서 발견됐다.


어딘가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을 거라고,

그냥 어딘가에 숨어있고 싶은 거라고,

애써 생각하던 사람들은

그의 소식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은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나, 그의 빈자리, 닮은 목소리에 문득 가슴이 내려앉곤 했다.

3년을 채워가는 지금, 텅 빈자리는 많이 메워졌다.

가끔씩 그가 만든 마음의 틈 사이로 바람이 불 때도 있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시간들을 살아내고 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자살 소식에 에미코는 말없이 무너지지만 영화는 그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절망을 한 꺼풀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는 에미코의 모습부터 다시 보여준다.

전차 소리 대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어촌마을에서,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다시금 그녀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곳, 새로운 가족들과의 평화로운 여름

남편의 죽음이 그녀의 삶을 온전히 덮어버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 사라지지도 않아서 죽음, 누군가를 잃는 일을 두려워한다.

또 떠나버린 그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자책과 고독, 슬픔의 기억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에미코는 지금의 남편에게 묻는다


영화의 마지막, 에미코의 질문과 남편의 대답이다.


난 난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왜 기찻길을 따라 걸었는지. 한번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바다가 부른다고 그랬어. 아버지가 전에 배를 탔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편에 예쁜 빛이 보인댔어. 빛이 깜빡거리면서 당신을 끌어당겼다는 거야. 누구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환상적인 빛을 따라 떠나버린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죽음은 사실 남겨진 사람들의 것이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묻다가, 또 묻다가,

결국 마음에 묻는다.




한 토크쇼에 출연한 배우 키아누 리브스에게 사회자가 물었다고 한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지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워할 거라는 건 알아요





남은 사람들은 문득 그리워하고, 문득 슬퍼하면서 남은 삶을 살아간다.

우리의 몫만큼, 가끔은 어리석게, 가끔은 행복하게.

다음번 겨울에 다시 기억날 그 선배에게 조금은 덜 부끄럽도록,

덜 어리석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내야지 다짐한다.




더 잘 쓰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는 이 정도가 내 최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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