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극장에서 <화양연화>를 보고 나오는 길,
날카롭게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홍콩, 싱가포르, 앙코르와트의 습한 공기가 주변을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화양연화> OST에 있던 양조위 엽서가 기억나 오래된 물건을 뒤적거리다가
아주 오래전에 쓴 엽서를 함께 찾았다.
주소까지 적어놓고 왜 결국 부치지 않은 걸까 생각했다.
아마 그 엽서를 보내고 오지 않을 답장이 두려웠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였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사이'였다.
친구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공유한,
연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닌.
조금 더 어른이 되어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다 흐지부지 멀어졌고.
이제 다시 서로를 찾지 않는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생각한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산책하던 공원의 공기
시답잖은 이야기로 전화기를 놓지 못하던 밤들
주머니 속 캔커피의 온도
작고 작은 추억들이 미처 다 산화되지 않고 기억을 맴돈다.
화양연화의 두 사람은
서로의 배우자가 저지른 행동을 이해해 보려 애쓰고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고 더욱 애쓴다.
애쓰면 애쓸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해져 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멀어지기를 택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대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건
결국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남긴 채
헤어진 덕분 일지도 모른다.
모든 말을 다 전했더라면, 아름답지 않았을지도.
어떤 인연은 끝나지 않은 채 끝나버려서 영원해진다.
마음을 맴돌면서, 작아지고, 더 작아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줄어들고 줄어든 마음이 시가 되는 게 아닐까.
결국엔 시가 된 사람.
앙코르와트에 그가 남겨둔 것은 삼키고, 삼키며 시가 된 마음이었겠지.
글을 쓰며 생각난 노래를 적어보고, 기록해둔다.
반딧불이처럼 깜빡이며 나타나는 그리움들을 그러려니, 하며 다시 지나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