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하나의 장면이라면, 내겐 노랗게 펼쳐진 유채꽃밭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짧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다섯 배의 시간을 육지에서 살았지만, 그 기억의 농도는 짙게 남아, 내 기억 속 봄날에는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다.
‘봄’이란 단어에 영화 <계춘할망>의 유채꽃밭이 생각났다. 제주도 어느 마을, 홀로 손녀를 기르던 계춘할망. 금이야 옥이야 아끼던 소녀는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10여 년이 흘러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돌아온다. 할머니는 더 늦기 전에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주지 못한 사랑을 다 주려고 하지만, 손녀에겐 모든 것이 낯설다. 여러 사건과 시간을 겪고 난 뒤에야 손녀는 할망의 깊은 사랑을 비로소 깨닫는다. 여느 영화들과 닮은 이 영화가 나에게 특별하게 기억된 건 나의 할망과 시골집을 떠올리게 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시간만 갑자기 빨리 흐르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작고 약해지던 할머니는 4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 시골집에 들러 잠을 자는데 할머니는 서른 넘은 손녀가 혹시 춥기라도 할까 밤새 이불을 고쳐 덮어주셨다. 할머니의 손이 느껴질 때마다 눈물을 참느라 잠을 설쳤다.
사실 오랜 시간 할머니는 나에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몸도 풀지 못한 엄마를 보자마자 다음번엔 꼭 아들을 낳으라며 매몰차게 말하던 분이었고,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몇 마디 나누지 않고 아빠나, 남동생을 바꿔 달라고 하셨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내가 먼저 ‘아빠 바꿔드릴까요’ 하고 되묻기도 했다. 방학 때마다 들르던 시골집은 낡고 불편해서 얼굴만 비추고 도망치듯 떠나오기도 했다.
할머니를 애틋하게 느끼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회사 일로 부산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회사 열심히 다니라는 말을 하실 줄 알았던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 영도에 가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평생을 제주도에서만 지내신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엄마가 되기 전, 나의 할머니가 되기 전 젊은 여자로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어떤 꿈을 안고 섬을 떠나 육지로 왔을까. 이후 남은 평생을 제주도에서 귤을 키우며 살게 될 줄은 모르고 있었겠지.
철이 좀 들어서야 할머니가 엄마에게 모진 말을 했던 것, 나보다 동생을 더 아꼈던 것이 그녀가 살아온 세상과 세월의 탓이 컸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할머니의 오빠들은 일본 유학도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글을 몰랐다. 예쁜 말, 예쁜 글을 몰라 나와 엄마에게 거친 말을 하셨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밤새 이불을 고쳐 덮어주시던 다음 날 아침, 거동도 어려운 몸으로 자리에 앉아 낡은 빗으로 머리를 빗던 할머니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할머니의 사투리는 여전히 어려웠고, 할머니도 내가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말과 말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감정들이 깃들어 있었음을 기억한다.
“계춘”은 늦은 봄이란 뜻이라 한다. 영화 속 계춘할망의 사랑은 느리지만 천천히 손녀에게 가 닿는다. 늦게 도착한 봄처럼 나의 할머니, 그녀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사랑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늦더라도 결국 전해지는 온기가 있음을 믿고 싶다. 겨울에 머물러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기억해야겠다. 천천히 다다르지만 오랫동안 온기를 남기는 이런 봄도 있음을.
웹진 <2w 10호 봄의 이야기들> 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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