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_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램램


<원더풀 라이프>는 사람들이 죽은 뒤 거쳐 가는 '림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이곳에서 7일 동안 머물며 사흘 동안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골라내고,

림보의 스태프들은 그 기억을 영화로 제작해 준다. 죽은 사람들은 스태프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인생의 순간들' 이 녹화된 영상을 보면서 그중 하나의 순간을 골라낸다.

가장 소중한 순간을 촬영해주는 림보 스태프들, 아이러니하게도 스태프들은 그 순간을 고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들은 가장 소중한 기억을 쉽게 고르지 못하기도 하고, 이미 죽기 전에 그 순간을 결정한 이들도 있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고르는 이들도 있다.

기억을 고르고 나면, 다시 한번 그 기억,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장면을 촬영하고,

상영회가 끝나면 모두 '좋은 기억'만을 기억하면서 천국으로 떠난다.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은 내 인생의 장면들을 하나의 글로 편집하고,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일상은 영화 같지 않다. 하루하루는 비슷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잠이 든다. 매일 이어지는 일상의 변주 속에서 내 인생은 왜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뉴스나 SNS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고, 특별한데, 서른 중반의 일상은 어린 시절 상상했던 것보다 더 평범하고, 심심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스쳐가는 생각, 사건, 타인들은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고,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 생각들을 정리해 글로 엮으면, 흑백으로 복사되는 일상 속에 컬러 페이지 한 장씩 끼워 넣는 기분이다. 글을 쓰며 떠오른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문득 재생되는 짝사랑의 기억이 마음을 덥히기도 한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읽으면 그때의 내가 반갑고 때론 기특하기도 하다. 글로 남는 모든 순간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이미 마지막 순간을 골라온 키요 할머니, 할머니는 림보에서도 과거를 회생하는 대신 림보의 시간을 살아간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죽음이나 상실이 처절하게 다가오지도 않고, 슬픈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살아가는 것의 평범함과 그 소중함'을 담아내는 이 영화의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울컥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마지막으로 꼽은 순간들은 평범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벚꽃 내리던 장면, 아내와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날, 비행기를 타던 순간,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추던 순간이 영상으로 남고, 그 장면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기억만을 안고 림보를 떠난다.


언젠가 림보에 도착한다면 내 인생의 장면을 고르기 전에 내가 쓴 글들을 읽고 싶다. 글로 남은 일상의 페이지들이 단 하나의 순간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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