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방울방울_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하는 법

by 램램


책 <부지런한 사랑>에는 이슬아 작가가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이들의 글감 중 하나가, 나에게 보내는 꿀팁이다.

윤예영 작가의 똑부러지는 글 <부지런한 사랑> 104페이지


열두 살, 열세 살 남짓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다.

아이들은 언젠가의 자신에게 유튜브를 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실수를 경고한다.


서른일곱의 나는 열두 살의 나에게 어떤 편지를 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 팁은, '운동을 즐겨보도록 해'

나는 체육시간이 너무 싫었다. 달리기도 잘 못했고, 멀리뛰기도 잘 못했고, 뒤구르기도 못했다.

항상 모든 것을 잘하려고 너무 애쓰는 어린이는, 못하는 걸 평가받는 게 부끄럽고 힘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은 다이어트를 위한 힘든 것, 억지로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운동을 못하니까 즐길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2년 전 러닝을 시작하면서 잘하지 않아도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지 않더라도 운동을 꼭 즐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두 번째 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돼'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했었다. 나중에는 그 친구들과 친해지고, 인싸로 거듭났지만,

줄곧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이 남아있곤 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걸,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훨씬 더 현명한 선택들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빨리 알았을 거다.


세 번째 팁 ' 엄마에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

지금도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오던 길이었는데

내가 제법 똑똑하고, 뭐든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열두 살의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나중에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등장하는 유명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한 말이겠지만,

훗날 엄마는 그 말이 너무나 상처였다고 털어놓았다.

열두 살의 나에게 전하고 싶다.

"나는 나답게 살 거야, 엄마. 그러니까 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라고 ,

잘나고 멋진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어른이 되는 법은 더 다양하다고.

그리고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했던 것들을 좀 더 고마워하라는 말도.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의 주인공은 1990년대 초의 도쿄에 살고 있는 스물일곱의 타에코다.

타에코는 도시에 살지만 시골을 동경해서 휴가 때마다 농촌에 간다.

농촌생활을 즐기는 좀 특이한 타에코

그곳에 머물며 농사일을 배우며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의 시절의 자신을 회상하는데,

그녀의 추억은 생각처럼 '방울방울'하게 예쁘지 만은 않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겪었던 상처들, 자신을 모자라다고 여기는 가족들의 무심함.

무심하게 상처 주는 법을 먼저 배우는 그 나이의 소년들.

예쁘고 소소한 추억들과 함께 흉터로 남아있는 씁쓸한 기억도 많다.


주인공보다 열 살이나 많은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보니, 이 영화는 어른을 위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추억은 항상 예쁜 필터 속에서만 재생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가, 우울하고, 구겨진 어린 시절의 내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추억은 '방울방울' 하게 귀엽지만은 않아서 어린 시절에 겪었던 슬픈 상처나 아쉬운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흔드는 경우들이 있다.

나에 대한 불만, 막연한 두려움, 착한 어린이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

이제는 나 자신을 잘 다룰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어린 시절의 내가 나타나면 약해진다.

어쩔 수 없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어버릴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타에코가 지금의 타에코를 만날 수 있다면, 지금의 타에코가 어린 시절의 타에코를 만날 수 있다면



영화의 마지막, 타에코는 어린 시절에 묶여 있던 자신의 감정을 담담히 털어놓으며 지금의 자신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사실, 추억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추억을 딛고 넘어온 지금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였다.

어린 시절의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어린 시절의 걱정이나 두려움은 지금의 내가 마주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지금의 나도 뭐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도 결국 지금의 나니까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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