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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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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Feb 25. 2024

애도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두 발을 담가낸다

한 발을 빼낸다

발가락을 감싸 쥔다

팔꿈치를 감싸 쥔다

씹어 삼켜낸다

씹어 뱉어낸다


언급해선 안 되는 것들이 묵직해진다

그것들이 블랙홀 비슷한 게 되어

알맹이를 골라 빨아들일 때면

껍질이 남아, 모두의 시야를 채워낸다

자리를 지키는 거다



그러다 미지근한 진동이

의도 없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기억 이전에 일어난 것들이

다시 껍데기를 채워 나간다



그러면 눈꺼풀을 내려 까는 거다

발바닥이 차갑게 식어가도록 내버려 둔 채로

당연한 자리를 그렇게 차지해 낸다

그리고 고갤 들면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목 언저리에 추가 달린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는 재주가 있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석화된 것들로

그 익숙한 뒷모습을 왈칵 껴앉는다



그렇게나마 스스로의 동정을 구하는 거다

반사된 것들이 마땅치 않아 그렇지 싶다

그러니 디딘 곳 어귀에서

잠시나마 어깨를 감싸 쥐며

이렇게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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