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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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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y 13. 2024

흐르는 옛 이야기



수더분하게 시작했더랬다

이리 감기고 저리 감기며

등쌀에 곧이곧대로 치이고  

쌉쌀한 입술을 혀 끝으로 쓱 핥아

건조한 표면을 맞이해 내며




나는 그걸 휘휘 감아내어

울림이 있는 곳을 찾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면 어느 결계서,

한아름의 껍데기가  휘날리는 소리를

끊어짐 없이 들을 있었고

그건 나로 하여금

말을 참, 어서 멎게 만들었다




잊지 못했고, 있지 못했다

갈가리 찢긴 시간에 공명하던 가슴이  

여전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대는 걸 보면.

휘날리던 껍데기는 분해되어 닳고 낡아

결국 사라져 갔지만

서늘한 그 소리는 아직 내 살을 진득이 품어

시간에게 그러했듯

날카롭게 긁어내고 쑤셔댔다




얼마만큼의 비껴가는 눈을

허공에 더 던져야 하는 것일까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그림자를 짓이겨야 하는 것일까

수 없다 하는 것은

결국 무책임한 방관자의

시큰둥한 변명일 뿐인 것일까

그런 난 얼마나 멀찍이 떨어져서

두 눈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일까




흘러들은 옛이야기들이  

이 보잘것 없는 하루 속에서

용암처럼 느리고 차갑게 식어 굳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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