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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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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r 30. 2024

숨소리




소리가 들린다

맑은 유리잔 안에 갇혀 맴도는

한 줌의 소리가

입김의 온도를 잊은 채

단지 숨 하나로 인해

매끄러운 유리의 벽을

물기 없는 안개처럼 감싸고돈다



한 모금

잔에 든 미지근한 시간을

맞댄 입술을 살짝 벌려

가볍게 삼켜낸다

가볍디 가벼워

거의 삼키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숨을 마저 들이키려

잡고 있던 잔을 기울이면

다시 부서진 안개

찰나를 성실히 채우고 사라진다

그러면 축축한 것이

새어나간 숨의 자리를 채우고

새어나간 숨은 유리를 타고 돌다

잔에서 입을 떼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얼마간의 시간을 더 들이켜야

영원의 소리를 잡아둘 수 있을까

영면하는 순간에야

떠올리는 한 줌의 부스러기가 되어버릴까



모든 게 가라앉아버릴 때

다시 한번 유리잔을 잡는다

회환을 들이켠다

다시 갈 수 없는 그곳의

마지막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그제야 잔을  내려 놓고서 일어나

차가운 숨을 소모한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며

그 미지근한 소리를

매끄러운 동공에 얹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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