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여문 어린 꽃잎이
바람에 묻어나 쉬이 흩날린다
꽃잎이 내 곁을 스치도록 두었던 것은
발 밑에서 나뒹구는 몇 마디 말 때문에.
그것들은 일찍이 발에 치이고 뭉개져
그 형태가 변질되었다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말들 중
하나를 주워 올렸다
삼키는 것을 셈해보니
정박의 시간이 소모된다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나서
긴 긴 숨을 내뱉으니
허공에 입김이 서린다.
빈쯤 얼어버린 공기가 꽤나 스산하게 느껴진다
어디던 말을 놓으면 그만일까.
한 장, 두장, 그리고 순결한 세장.
겹겹이 포개어진 꽃잎이
듬성듬성 말을 대신한다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
잔향이 깃든 숨을 돌리고
나머지 것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여태 외면당해 왔다던 그것이
쭈뼛쭈뼛 주변을 서성인다
겨울의 치맛자락을 얼핏 본 것 같다.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다.
결국 남는 건
발밑에 쌓여 가는 꽃이파리들.
입가에 머금은 몇 마디 말들은
부드럽고 가벼운 것들에게 덮여 옅어진다.
마치, 까만 베일에 뒤덮인 밤하늘의 구름처럼.
이제, 꽃잎에 새겨놓은 것들이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