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 Oct 16. 2024

꽃잎



갓 여문 어린 꽃잎이

바람에 묻어나 쉬이 날린다

꽃잎 곁을 스치도록 두었던 것은

발 밑에서 나뒹구는 몇 마디 말 때문에.

그것들은 일찍이 발에 치이고 뭉개져

그 형태가 변질되었다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말들 

하나를 주워 올렸 

삼키는 것을 셈해보니 

정박의 시간이 소모된다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나서

긴 긴 숨을 내뱉으니

허공에 입김이 서린다.

빈쯤 얼어버린 공기가 꽤나 스산하게 느껴진다


어디던 말을 놓으면 그만일까.

한 장, 두장, 그리고 순결한 세장.

겹겹이 포개어진 꽃잎이

듬성듬성 말을 대신한다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


향이 깃든 숨을 돌리고

나머지 것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여태 외면당해 왔다던 그것이

쭈뼛쭈뼛 주변을 서성인다


겨울의 치맛자락을 얼핏 본 것 같다.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다.

결국 남는 건

발밑에 쌓여 가는 꽃이파리들.

입가에 머금은 몇 마디 말들은

부드럽고 가벼운 것들에게 덮여 옅어진다.

마치, 까만 베일에 뒤덮인 밤하늘의 구름처럼.


이제, 꽃잎에 새겨놓은 것들이

달빛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