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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Aug 04. 2022

[하루 글짓기] 꽃을 하는 즐거움

"꽃은 재밌어"




여기에서 "꽃"은 동사다.

'꽃을 하다'라는 의미로 댕강 짤려서 판매되는 절화를 손질해 꽃다발을 만들고, 꽃바구니를 만드는 등 꽃꽂이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꽃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순간이 즐겁다는 것.


띄엄띄엄 꽃 수업을 들은지는 1~2년 정도 됐다.

원데이 클래스를 몇번 듣다가 좋은 기회로 큰 꽃학원에서 수업을 듣게 됐고, 초급-중급-고급 수업을 1년 여간 들었다.

계절이 바뀌면 사용할 수 있는 꽃의 종류가 바뀐다는 사실도 알았다.

가짜 조화로도 인기가 좋은 튤립은 봄이 제철이다. 

여름이 오기 시작하면 서서히 시장에서 사라진다.

여름에는 리시안셔스를 사용한다. 히아신스도 종종 볼 수 있는데 히아신스는 향기가 정말 좋다.

또한 여름은 샛노란 해바라기와 수국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계절.

가을에는 단풍처럼 불긋불긋 색이 변한 잎 소재를 활용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나뭇가지에 눈이 핀 것처럼 예쁜 설유화가 멋지다.

사계절을 꽃과 함께 보내보면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반팔이 긴팔이 되는 동안 다양한 꽃을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꽃잎과 줄기, 가지, 색.

꽃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다. 

자연의 이치이고 자연의 모습이다. 

꽃을 하다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와 자연을 감상하는 눈과 자연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런 아름다운 꽃을 선사하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생겨난다.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 꽃을 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꽃다발과 부케 등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글을 쓰는 행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내가 꽃에 빠지면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누누히 말했던 것들이다.

단어와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과 문장이 모여 한 문단을 이루고, 여러 개의 문단이 착실하게 모여 글이 되는 과정이 즐거워 이 일을 해나갈 수 있었다.

꽃을 배워보니 글쓰는 과정과 다를 것이 없다.

꽃 바구니를 만드는 과정을 예로 들자면, 먼저 초록색 잎으로 기본 틀을 잡는다.

어떤 모양으로 높낮이는 어느 정도로 할지 밑그림을 그리는 셈.

그 다음 얼굴이 큰 꽃부터 하나씩 꽃을 배치해나가기 시작한다.

꽃은 저마다 얼굴 방향도 다르고, 색도 다르고, 꽃봉우리의 크기도 종류도 다르니 다양한 꽃을 적재적소에 맞게 배치한다.

신중한 손짓과 착실한 시간이 쌓여 하나의 꽃 바구니가 완성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조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 고민의 순간을 감내해가며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바삐 손을 움직이는 순간은 고독하고 괴롭지만 그래서 재밌고, 결과물을 받아들었을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지나온 시간과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증명되니 뿌듯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쉽게, 깊게 빠져든 대상은 거의 없었는데, 글쓰기 이후 처음 만난 대상이 바로 꽃이다.

글은 손은 물론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집중력을 원기옥처럼 모아서 호다다닥 워드에 펼쳐내야 한다.

하지만 꽃을 할 때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크리에이티브한 능력이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머리보다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움직인다.

회사에서 글쓰기 선배들은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몸쓰는 일을 해야 겠다'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퇴양볕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에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어느 선배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고 돈도 잘 번다는데 해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잡지사에서 만났던 한 친구는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일용직 노동자, 해녀, 서브웨이 직원들을 비하하는 바는 전혀 아닙니다)

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하얀 바탕 위에서 깜빡 거리는 커서를 보고 있노라면 줄기를 다듬고, 물을 올리고, 손이 아프지만 꽃을 움켜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든다.




나는 이미 글쓰기로 먹고 사는 이후의 삶을 정해놓았다.

꽃을 해야지.

지금의 회사가 나에겐 글쓰기로 월급을 받는 마지막 회사가 될거라 확신하고 있다.

어디서, 어떤 형태로 꽃을 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늘 머릿속으로 꽃을 만지는 사람이 된 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상상의 나래 속에서 나는 마냥 행복해보인다.

멋진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 않을까.

난 이미 꽃을 하며 돈을 벌고, 그 이야기를 글로 써야 겠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나는 파워 J다)




내일 글짓기 시간에는 시간 제한을 두고 글을 써봐야지.

제한시간 10분

주제는 방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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