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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발레를 하는 건 같은 이유에서다.
잘 쓰고 싶은 마음.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몸을 잘 쓰고 싶은 마음과 닮았다.
어느 날 발레 선생님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게 설명해야 하는 거구나.
점프를 하거나 아라베스크 동작을 할 때 왼쪽 발이 앞에 나가면 반대로 팔은 오른쪽이 나가야 하는데, 다들 같은 팔을 들었다. 우리는 로봇처럼 왼쪽과 오른쪽, 정확한 입력값이 들어와야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선생님은 걸을 때처럼 반대 팔을 들어야 한다고 설명하며 본인은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고 했다. 우리도 그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발레리나와 몸치는 역시 다르구나.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레 나오는 몸짓. '제6의 감각'이라고도 하는 고유 수용성 감각이란 게 있다.
이는 신체 위치, 자세,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뇌에 전달하는 감각이다. 우리가 눈을 감아도 물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게 이 감각 덕분이다. 이미 활동한 근육의 정보가 뇌라는 컴퓨터에 저장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훈련한 무용수나 발레리나들이 흐르는 음악에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도 이 감각이 일반인보다 발달되어서라고 한다. 매일 발레 수업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 뇌에 방대하게 저장된 나쁜 근육의 기억들을 몰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쁜 기억을 잊는 것보다 좋은 기억으로 덮는 게 더 낫다고 하지 않는가.
곧은 자세, 유연한 근육, 단단한 복근! 몸에다 밑줄을 그어가며 저장해두고 싶다.
실제로 밑줄이 그어진 '풀 업' 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는 풀 업은 복근에 힘을 주고 갈비뼈는 닫고 정수리 끝까지 몸을 곧게 세우는 자세이다. 풀 업이 잘되면 옆에서 보았을 때 몸이 일자가 된다. 발레리나의 움직임이 공중에 떠다니듯 가벼워 보이는 것도 이 풀 업 덕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잘 모르겠다. 저 사진의 화살표처럼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할지 몰라서 매번 머릿속엔 물음표만 켜진다.
머리를 누가 위에서 잡아당긴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이 이 말을 할 때마다 내 머리 끄덩이를 망나니가 잡아 올리는 상상만 하게 된다.
그래도 안되면 선생님이 이렇게 고함을 지른다.
키 커지게! 키 커진다!
실제로 이 풀 업 때문에 발레를 오래 하면 키가 커진다고 한다. 나 또한 거북목이 교정되면서 목이 길어진 것 같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서 운동은 필수가 아닌 생존이 되었다. 사람의 몸은 7년 주기로 재배치된다고 하는데 정말 달라졌다고 느낀 건 최근이다. 아침에 침대에서 산뜻하게 일어나는 건 오래전 일이 되었고 얼굴의 탄력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무서운 건 본격적으로 늙고 있다는 몸의 신호였다. 배터리 수명이 줄어들어 활기가 사라지는 느낌. 비타민제나 홍삼을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피로가 나를 덮쳤다.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는 얼굴보다 뚜렷하게 드러났다. 집안 내력인 당뇨병 수치도 위험 수위가 되었고 간 수치도 좋지 않았다.
무심결에 망가져가는 몸과 마주하니 10년 넘게 애지중지하며 입었던 겨울 코트가 떠올랐다. 입을 때마다 털어주고 다려주던 저 울 뭉탱이보다 내 존재 그 자체인 몸은 막 쓰고 있었다. 80만 원 남짓 주었던 저 코트보다 값을 매길 수도 없이 소중한 데 말이다.
몸을 낭비해 왔다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오늘도 발레 수업에 열중한다.
마찬가지로 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내내 품고 있다 보면 어느 날 정말 잘 쓰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제6의 감각처럼.